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애니멀호딩'을 아시나요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5 18:48

수정 2025.12.15 19:35

안승현 전국부장
안승현 전국부장
애니멀호딩이란 말이 있다. 개인이 동물을 제대로 돌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많은 수의 동물을 키우면서 방치하거나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애니멀호딩은 저장강박증의 '생명체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 저장강박증이 물건을 집착적으로 모으는 것이라면, 애니멀호딩은 동물을 과도하게 모으고 키우는 증세다.

두 경우 모두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수집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같다.

이런 성향의 상당수가 저장강박증 이외에도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적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 증상이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할 경우 동물복지 관점에서는 동물학대의 일종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단어를 뉴스에서 처음 봤다. 노원구 상계동 가정집에서 200여마리에 달하는 개가 구조됐다는 소식이었다.

200여마리다. 몇 번 다시 읽어봤다. 20마리도 아니고 200여마리. 몇년 전 한 후배가 오랫동안 반려견을 키우는데 사료값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를 했다. 월급날에 사료를 왕창 산다는 얘기를 듣고, '개 한 마리 키우는 게 만만치 않구나'라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0마리를 키운 사람이 있었다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인 사람 때문에 노원구가 한 달 넘게 매달렸다. 서울시, 동물보호단체, 시민 자원봉사자가 달려들어 개를 구조하고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임시보호소를 운영했다. 중성화 수술만 137건. 비용은 2억원이 넘었는데 그걸 정부 예산이 아니라 민관 협력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동물병원이며 미용학원이며 온 동네가 팔을 걷어붙였다. 덕분에 117마리가 새 가정을 찾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애니멀호딩은 단순히 동물을 많이 키우는 것과는 다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다수의 동물을 사육하면서 동물의 건강과 복지 저하 및 주거환경 전반에 문제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한다. 결국 능력 밖의 일을 벌여 동물과 자신, 그리고 주변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애니멀호딩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위에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고 사회에 떠넘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빚 내서 집 사고, 키울 능력이 없으면서 아이 낳고, 책임질 능력이 없으면서 사업 벌이는 사람들. 그들이 망하면 채권자가 손해 보고, 아이는 방치되고, 은행이 빚을 떠안는다. 능력 밖의 일을 벌여놓고 감당 못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구조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노원을 위한 책임 있는 행정"을 약속했다. 구청이 책임 있는 행정을 했다는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진짜 수고한 사람들은 자기 돈 들여 개를 씻기고 중성화 수술비용 대고 임시보호소에서 배변 치우며 밤새 개 짖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밥그릇 들고 개 똥을 치우며 씨름했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것은 이처럼 '민관 협력'이 실제로 작동했다는 부분이다. 비용을 민관이 힘을 합쳐 부담했고,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임시보호에 나섰다. 중성화 수술, 백신 접종, 위생미용까지 민간 동물병원과 애견미용학원이 나섰다고 한다. 정부가 세금으로 전부 해결하려 했다면 예산과 인력 부족 속에서 개들은 그대로 방치됐을 것이다.

상계동 가정집에서 구조된 개들 중 아직 새 가정을 못 찾은 개들이 있다. 78마리가 아직 임시보호소, 구청 소유 컨테이너 등에 남아있다고 한다.

애니멀호딩의 근간이 무엇이든 간에 사회적 문제가 되면 예방하고 치료해야 한다.
상담도 받아야 한다. 또다시 두 번째 애니멀호딩이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력의 그물도 더 촘촘히 쳐야 한다.
개는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