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변곡점 맞은 '금산분리' 원칙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6 18:22

수정 2025.12.16 18:22

정원일 산업부
정원일 산업부
'철옹성' 같아 보였던 대한민국의 규제가 허물어지고 있다. 1982년 기업의 독점 부작용을 막자는 취지로 도입된 '금산분리'의 원칙은 43년 만에 변곡점을 맞았고, 정부는 유례없는 금액의 대형 정책펀드를 만들어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기업에 유독 보수적이었던 국내 기조를 비춰 봤을 때 이례적일 만큼 발빠른 변화다. 두꺼운 규제의 빗장들이 풀리는 데는 인공지능(AI)이라는 마법이 주효했다.

AI 경쟁력이 더 이상 개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경쟁력의 문제라는 공감대는 최근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수장들과 대면해 "금산분리 제한은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의 경우 그(독점) 문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라며 제도 완화 필요성을 시사했다.

정부는 AI 학습에 필요한 각종 공공데이터의 개방을 검토하고, AI 인프라 구축에 들어가는 막대한 양의 전기와 용수 역시 책임지겠다는 기조를 밝혔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비AI' 산업군에서는 볼멘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핵심 산업의 성장에 국가 경쟁력이 달렸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 같은 문제의식에는 한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AI 산업이 국민에게 무엇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가져다줄 수 있는지다.

AI 산업은 공공자원에 깊이 의존해 있지만, 글로벌 AI 기업들의 사례만 보더라도 수익성에 대해선 의심 섞인 눈초리가 여전하다. 결과물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나 전력기업 등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특정 산업군만이 수혜의 가시권에 들어 있다.

전통적 제조업과 비교해 첨단산업 특성상 고용창출 효과 역시 제한적이다. 허위정보와 딥페이크, 개인정보 침해, 저작권 분쟁 등 파생되는 부작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 역시 국가의 몫이다. 이익은 민간이 가져가고, 청구서는 정부와 사회가 받는 구조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AI 거품론에 대한 판단은 확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그 열매가 특정 기업들의 실적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규제를 허무는 논의와 함께 AI 산업의 성과를 어떻게 사회 전체와 나눌 것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특혜에는 그만큼의 책임도 따라야 한다.
AI라는 마법의 단어도 예외일 수는 없다.

one1@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