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기업이익 공유' 폭탄에도 무덤덤한 나라

홍수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6 18:22

수정 2025.12.16 18:22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한미 관세협상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10월,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인 고위관료 A는 부처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와 지시를 했다. ① 정부가 기업의 수주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데 그 과실을 몇몇 기업이 독식하는 게 맞나. ② 수혜기업이 정부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라. 소수 기업이 이익을 다 누리는 상황에 대한 비판 논리와 정책 대안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전략수출금융기금' 구상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국가 역량을 투입해 대규모 전략사업을 수주해도 혜택은 소수 기업이 누린다"며 "전략수출기금이 함께 지원해 수익 일부를 환수하면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두 달 전 A의 말과 같다.

대통령 의지에 따라 A가 부처에 지시했고, 두 달 만에 나온 결과물이 전략수출기금인 것이다.

이 기금은 같은 시기 함께 발표된 150조원짜리 국민성장펀드, 한국형 국부펀드 등 굵직한 정책패키지에 가려 주목을 덜 받았다. 언론 역시 전략수출기금을 기업 지원이나 국부창출 플랜쯤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수출기금의 출발점이 '기업 지원'이 아니라 '이익 공유'라는 걸 잊지 마시라. 이 기금에 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한 계정을 따로 만들고, 여기에 기업이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민관 합동 수주 노력으로 기업이 이익을 봤다면 '매출의 몇%' 또는 '이익의 몇%'를 내는 구조다.

기재부는 방산 수출 시 기존 정책금융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기금 도입 배경으로 들고 있다. 정말 현재의 금융지원이 부족할까. 폴란드와의 2차 방산 수출계약에서 전체 금액의 80%에 대해 대출과 보증 형태로 금융지원을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이 지연되고 있다. 금융지원을 80%보다 더 해주고 보증료율도 내려 수출을 성사시킨다면 이게 국부창출일까, 제살 깎아먹기일까.

무엇보다 헌법59조는 모든 조세를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기여금이나 부담금이라도 강제성이 있거나 일반재정으로 활용된다면 조세에 준하는 성격으로 해석돼 위헌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미르, K스포츠 재단' 논란이 다시 거론되는 이유다.

이런 점을 의식해 정부는 법을 새로 만들고 기금의 목적을 '산업생태계 지원'으로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기업이 이미 법인세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정책금융의 혜택을 봤다는 이유로 추가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 정당한지, 근본적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더욱이 정부가 기업에 기여금을 요구하는 순간 전략수출기금은 정책금융이 아닌 정부 재원 회수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 정책금융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행정적·비용적 부담이 추가된다면 기업은 달리 행동할 가능성도 높다. 수은 대신 해외 금융기관을 이용하거나 별도 법인을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 공유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기여한 기업은 이를 '거래'의 일부로 인식하고 정책적 배려를 정부에 더 요구할 수 있다. 정부 역시 기여 여부에 따라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공적 기준보다 '관계'가 더 중시되면서 정책결정의 중립성은 훼손된다. 정실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기업이 번 돈을 기여금으로 내라는 소식에 나는 처음 충격을 받았고, 이 소식에 무덤덤한 우리 현실에 당황스러웠다. 위헌적 이슈들이 엎친 데 덮친 결과일 것이다.

지금 기재부는 수출금융개편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문제 소지를 차단하는 데 머리를 짜내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존 조세체계와 수출금융 제도가 있는 한 새로운 기금을 도입하는 것은 옥상옥일 뿐이다. 그 어색함 때문에 문제 있는 제도는 언젠가 민낯을 드러내게 돼 있다.
'복종의 의무'가 사라진 시대, 공무원들은 이 어색한 기금이 굴러가는 과정을 낱낱이 기록해야 한다.

syho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