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구촌 최대의 축제, 월드컵의 기본 정신은 '화합'이다. 그러나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그 정신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주최국 미국의 강화된 반이민 정책이 월드컵 본선 진출국의 팬들을 국경 밖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입국 부분 제한국' 명단에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를 추가했다. 이미 '전면 입국 금지국'으로 지정된 이란과 아이티를 포함해,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무려 4개 나라의 국민이 미국 땅을 밟는 데 제동이 걸렸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내세운 명분은 '통계'다. 세네갈(4%)과 코트디부아르(8%) 국민의 비자 체류 기간 위반율이 높다는 것이다. 국경 통제는 주권 국가의 고유 권한이라지만, 전 세계인을 초대해 놓고 특정 손님만 문전박대하는 모양새는 주최국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한다.
가장 기이한 점은 이른바 '이중 잣대'다. 미국 정부는 월드컵 출전 선수들에 대해서는 입국 규제 예외를 적용한다. 그라운드 위 11명의 선수는 환영하지만, 그들을 응원할 자국 팬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셈이다. 팬들의 함성 없는 월드컵, 자국민의 응원을 받지 못하는 국가대표팀.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던 월드컵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월드컵 팬들을 위한 '신속 비자 발급(패스트트랙)' 제도를 발표하며 생색을 냈다. 하지만 입국 규제 대상인 이들 4개국 국민에게도 이 혜택이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특히 전면 입국 금지국인 이란과 아이티 팬들에게 월드컵 직관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이란, 아이티. 이 4개국은 모두 조별 리그를 미국에서 치른다. 자국 팀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역사적인 순간을, 정작 그 나라 국민들은 TV 중계로만 지켜봐야 할 처지다.
축구는 팬이 없으면 단순한 공놀이에 불과하다. 특정 국가의 국민을 배제하고 치러지는 월드컵은 더 이상 '지구촌 축제'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비즈니스이자, 허울 좋은 '그들만의 잔치'일뿐이다. 2026년 6월, 미국의 경기장은 화려할지 몰라도 관중석 한편은 서늘하게 비어있을 것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