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AI의 등장으로 대규모 직장인 해고와 심각한 대졸 취업난이 뉴스를 뒤덮고 있다.
맞다. AI는 더 이상 인간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실력자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노동을 대신 해주는 '외국 노동자'가 아니라 가장 알짜배기였던 고급 업무마저 뺏는 '외계 포식자'다. 그래서 내년에는 해고와 취업난 뉴스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직업세계의 격변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학교다. 일터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직장인을 양성하는 교육체계는 과거 산업화 시대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다. 수능 또한 달라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달라져야 한다. AI에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와 '집과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는 아이'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지만 AI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동을 학대하는 그림은 그릴 수 없다"는 이유다.
학대라고 해도 우리는 산업화를 훌륭히 이루어내고 빈곤에서 벗어났으니 가치 있는 희생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한다면 얻는 것은 또다시 빈곤일 테다.
이제 학교는 AI가 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개발해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학생은 AI 발끝도 못 따라갈 능력만 16년 동안 훈련받고 있다. AI 시대가 왔음에도 시험 볼 때 AI를 사용하면 '부정'이고, '자수하지 않으면 정학'이란 범법행위로 간주한단다. 곧 학부모들의 불안과 불만이 폭발할 것이다. 세계에서 자녀 교육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고 가장 높은 기대를 거는 학부모가 아닌가. 배우자가 해고되고 대졸 자녀가 백수가 되는데, 그 똑같은 길을 가는 어린 자녀를 보며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교육계가 약간의 수정만으로는 이 거대한 학부모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수년간 장고할 시간도 없다. 지금 당장,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가장 먼저,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 디지털화 하네 마네가 아니라 내용물을 절반으로 대폭 줄여야 한다. 어차피 교과 내용 절반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수험생 간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교과 내용의 절반은 AI가 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할애해야 한다. 창의적 발상의 원천인 통찰력과 AI를 인간의 비서로 길들이고 이끌어갈 통솔력이 새로운 학업 성취도와 우수한 인재의 기준이 되어야 하겠다.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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