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에 씨 뿌린 정부
전쟁 터널 거쳐 경제 상승 이끌고
담수화·원전안전 기술 세계 선도
텔아비브·베르셰바·하이파
약육강식·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혁신성장 생태계 중요성 일깨워
전쟁 터널 거쳐 경제 상승 이끌고
담수화·원전안전 기술 세계 선도
텔아비브·베르셰바·하이파
약육강식·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혁신성장 생태계 중요성 일깨워
미사일과 로켓탄이 날아오던 곳들도 이제는 평온과 활력을 되찾았다. 실리콘밸리·뉴욕·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타트업 투자 허브라는 명성도 여전했다. 시민 평균연령인 35세보다 더 젊고 활기찼다. 지난 11월 텔아비브에 며칠 머물 때였다. 이스라엘이 2년을 끌어왔던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하마스와의 전쟁을 1단계 휴전으로 마무리한 지 한 달을 막 넘기고 있었다.
지표와 수치들도 전쟁의 터널을 거쳐, 경제가 다시 상승 국면에 올라탔음을 보여줬다. 2024년 스타트업 투자액 106억달러, 2025년 상반기 투자액도 72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전쟁 중에도 글로벌 기업의 이곳 벤처들에 대한 구애는 끊이지 않았고, 사상 최대 인수합병도 이뤄졌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은 클라우드 보안 스타트업 위즈(Wiz)를 320억달러(약 46조72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공적 창업지원기관 스타트업네이션센트럴(SNC)의 아론 투르카스파는 "전쟁 중에도 창업프로세스는 진행됐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 직후 이스라엘혁신청(IIA)은 2억달러를 스타트업 보조금으로 풀었다. 창업초기기업을 위한 생태계 유지에 공을 들이며 방파제 역할을 했다. 1980~1990년대 핵심 벤처캐피털 역할을 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씨앗을 뿌린 것도 정부였다. 담수화기술·원자력안전시스템·사이버보안 등 선행기술로 세계를 선도했던 배경에도 정부의 선견지명과 선행투자가 있었다. 네게브사막의 도시 베르셰바도 그 한 예다. 20만㎡의 사이버파크에는 오라클, IBM 등 500여개 국내외 기업과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국가사이버국(INCD), 사이버 정보기관 8200부대 등도 이곳에서 꽃을 피웠다. 정부가 계획하고 주도하자 민간기업과 외자가 밀려들었다.
지중해 관문 도시 하이파. 새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스타트업의 내일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 전시의료체계를 갖춘 국립람밤의료원.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메디테크 등 의료산업 현장들이 펼쳐졌다. 내시경 초음파 생체검사기구(Biopsy), 식물인간 의식반응측정 및 재활시스템, 3D 바이오 프린팅 각막이식 등 첨단 진단치료체계들이 이곳에서 나왔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사이버보안산업을 석권해 온 이스라엘은 생명공학을 정보통신기술(ICT)·인공지능(AI)과 결합해 고도화해 나가고 있었다. "의료도 혁신성장의 동력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6500여명의 직원이 공유하고 있었다.
하이파는 세계 일류 공대 테크니온과 마탐연구단지를 축으로 각종 벤처 및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의 연구개발 센터들이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글의 서제스트 검색, HP의 마이크로프로세스 발열처리 등도 이곳에서 개발됐다. 이런 생태계도 정부의 계획과 마중물 역할이 현실로 만들었다. 실패했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이곳의 상식이다. 실패한 창업자는 '실제 부딪쳐 본 경험자'로 여겨진다. IIA는 매칭펀드를 구하는 창업자에게 보조금 100만달러를 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는다.
4억이 넘는 사면의 적국들에 둘러싸인 인구 1000만의 나라가 지정학적 불안과 전쟁을 넘어 안정과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연하고 활력 있는 벤처들을 앞세운 '혁신경제' 뒤에 정부 계획과 지속적인 투자관리가 있었다.
다시 약육강식의 시대로 돌아간 세계 질서와 기술패권을 향한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혁신성장 없이는 생존도, 미래도 없다. 국민주권정부의 제1의 과제는 혁신성장을 위한 생태계 구축이고, 이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 속에서 성공신화가 다시 나오고, '붕어와 개구리, 가재'의 아이들도 용이 되는 그런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스라엘은 한 선례일 수 있다. 잠재성장률이 제로로 곤두박질치는 속에서 새 정부는 후세에 "혁신성장의 생태계를 구축해 양극화도 해소하고, 성장한계도 극복하는 기틀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씨를 뿌리고 묵묵히 현재를 인내하는 정부를 기대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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