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규는 언제든 변경 가능·강제력 약해… 민주당 "사법부 불신 자초" 반발 가능성
[파이낸셜뉴스] 대법원이 형법상 내란죄·외환죄, 군형법상 반란죄를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의 위헌 논란을 피하면서도 사법부 스스로 내란 재판을 신속·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취지로 읽힌다.
이로써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의 입법 명분은 다소 줄어들게 됐다. 다만 대법원의 안은 언제든 변경이 가능하고 강제력이 부족한 예규에 그치는 등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주당 논리를 완전히 차단하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18일 열린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가적 중요사건'은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 중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파장이 매우 크고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며, 신속하게 재판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사건을 말한다.
부칙으로 정한 적용 범위는 예규 시행 이후 공소 제기(기소)된 사건이다. 항소심의 경우 항소가 제기된 사건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내란·외환 관련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항소심부터 적용 가능하게 된다.
각급 법원장은 이들 대상 사건을 전담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고, 해당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해야 한다.
핵심 내용으로 꼽히는 배당에 관해선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무작위 배당을 하되, 배당받은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하도록 했다. 기존 '법관 등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및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 선정 및 배당 예규'에 우선해 적용된다.
전담재판부가 맡은 사건은 전부 재배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기존 심리 사건의 시급성과 업무부담 정도 등을 고려해 예외를 둘 수 있다.
또 대상 사건의 관련사건 배당은 관계 재판부 협의를 먼저 거치고, 관련 사건 외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담재판부에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지 않도록 했다. 법원장은 전담재판부가 대상사건을 신속하고 충실히 심리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지원을 해야 한다.
당장 내년 상반기에 진행될 내란 사건 항소심의 경우 서울고법에서 전체 판사회의와 사무분담위원회를 거쳐 전담재판부 수를 정하면 모든 재판부에 무작위 배당을 실시해 배당받은 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하고 있던 기존 사건은 재배당하고 신규배당은 중지된다.
행정처의 이런 조치는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수정안의 허점을 선제적으로 보완해 주도권을 입법부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 수정안대로 법안이 만들어지면 수십명에 달하는 내란 재판 당사자 측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을 해줄 것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위헌심판을 제청하게 될 경우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재판은 중지된다. 신청을 기각하더라도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신속한 재판을 위한 법안이 오히려 ‘재판 지연’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행정처 관계자는 "법안에 조금이라도 위헌을 문제 삼을 소지가 있다면 피고인 측 위헌제청, 기피신청 등 절차적 주장을 할 여지가 있는데 그럴 경우 재판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그러한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주당의 수정안의 경우 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처분적 법률’적 성격이 있어 시행되더라도 위헌·위법 논란이 뒤따를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행정처는 인식한다.
다만 행정처가 예규 제정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민주당이 오는 23일로 예정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수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 계획을 거둬들일지는 미지수다.
△예규는 법이 아니라, 행정규칙이므로 사법부가 언제든 변경·폐지가 가능한 점 △국회의 통제나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하는 점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사법부의 방어 성격이 짙은 '셀프 개혁'이라는 점 △전담재판부 수나 사건재배당 범위 등 핵심 판단이 모두 법원장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 △예규는 강제력이 약하다는 점 등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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