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한수현 기자 = 대규모 고객 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를 계기로 기업이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개인정보를 유출할 경우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관리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과징금 확대가 필요하지만,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 강화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옳다는 의견이 나온다.
18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무위 법안심사1소위는 지난 15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심사·처리했다.
개정안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에서는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3%로 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3년 이내 반복적으로 법 위반이 있는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1000만 명 이상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경우 △시정조치 명령에 따르지 않아 유출이 발생한 경우에만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현행법에선 매출 산정이 곤란한 기업에 대해선 과징금 상한을 20억 원으로 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에는 50억 원으로 높이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여야는 개정안 시행 전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더라도 쿠팡 등 최근 발생한 유출 사고에는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을 중심으로 쿠팡 개인 정보 유출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및 과징금 가중 등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같은 징벌적 과징금 확대 외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구제할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전환을 조속히 도입하기를 바란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기업 책임을 강제하면서 신속한 보상과 재발 방지를 이끌지만, 우리나라는 집단 소송 부재, 약한 징벌 배상, 피해자 입증 책임, 분쟁 조정의 비강제성이 겹치면서 그 책임이 사실상 공백 상태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과징금으로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피해자들의 손해를 전보할 수 없어 법원에서의 위자료를 확대하는 등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유출될 거라고 생각하고 쿠팡 등에 개인정보 제공을 동의한 소비자는 없을 것"이라며 "개인정보를 활용해서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이상, 그 관리 책임을 소홀히 해 대규모 유출이 발생했다면 그에 맞는 징벌적 손해배상 금액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도 "지금과 같은 손해배상 금액 수준이면 기업에서는 개인정보 관리 시스템을 강화할 이유가 없다"면서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라도 손해배상 금액에 징벌적인 부분을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법원의 위자료 액수가 확대되고 있지만, 당장 징벌적인 부분을 추가할 수 없을 테니 앞으로 다른 사건을 위해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마련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징벌적으로 과징금을 확대하는 것보다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 강화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옳다는 의견도 있다.
정태원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과징금만 높인다고 해서 (이번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업들의 보안 시스템 구축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유출된 이후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보다 개인정보 보호 관련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일정 기간 점검하는 과정을 규정으로 둬야 할 것 "이라며 "사전 예방 쪽으로 가야 하는데 사후적 조치만 마련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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