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고환율 못잡으면 제2의 '換亂' 온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8 18:18

수정 2025.12.18 19:11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환율은 10월에 1400원대로 올라섰고, 12월에는 1470원을 돌파했다. 12월 평균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며, 이대로라면 내년에 1500원 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의 통화는 달러 대비 가치가 오르는 추세인데, 유독 원화만 약세를 보이는 것이 특이하다.

정부는 환율상승 원인이 내국인의 해외투자에 있다고 본다.

개인과 기관이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가 증가하여 달러 수요가 크게 늘어 환율이 올랐다는 것이다. 수급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내국인의 해외 주식투자를 억제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참 옹색한 진단이요, 치졸한 처방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표면적 증상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이며 구조적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돈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역대 최고치인 4470조원에 이른다. 정부 예산은 올해 706조8000억원에서 내년에는 역대 최고 수준인 727조9000억원으로 증가한다. 돈이 많이 풀리니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원화 가치가 하락한다. 달러도 자산의 일종이니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성장이 부진한 것도 돈의 유출을 부추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0%로 저조하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3.2%이고, 미국도 2.0%에 이른다. 경제가 부진하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돈이 해외로 나간다.

성장동력을 활성화한다는 정부 대책은 돈 뿌리는 것에만 열심이다.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에 5년간 150조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이에 더해 한국형 국부펀드를 만들어 국내외 첨단산업에 자유롭게 투자해 국부를 증식해 미래 세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모두 돈을 퍼부어 경제성장과 국부를 키운다는 접근이다. 이 정도로 많은 돈이 풀리면 돈값은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제구조에 있다. 한국의 기업여건과 투자환경은 날로 척박해지고 있다. 기업과 돈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에 투자할 게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5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 1~9월 누적 외국인 투자는 206억51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0% 감소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기업규제 강화 법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무서운 게 남아 있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따라 매년 2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 기업들이 미국 조선업에 투자해야 하는 금액도 1500억달러에 달한다. 이런 엄청난 달러 수요를 예상해 벌써부터 달러 잠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에는 달러 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우리나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굴욕적인 국제통화기금(IMF) 통치를 받으며 강제적으로 구조조정당한 악몽이 다시 현실로 살아날 수 있다.
이처럼 환율상승이 심각한 위기를 예고하는데 한가롭게 서학개미 탓이나 하는 정부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