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ETF 시총 매년 두 배↑
무역수지·환율 디커플링도 원인
내년 상반기 1350~1450원 전망
무역수지·환율 디커플링도 원인
내년 상반기 1350~1450원 전망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기준 1478원으로 전일 대비 4.9원 상승 거래됐다. 이는 최근 1년 새 최대치인 1487.60원에 근접한 수치다. 지난 1일 1468원에 거래되던 원·달러 환율은 14거래일 만에 0.68% 오르는 등 상승 추세다.
최근 환율 급등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역수지와 환율의 디커플링이다. 과거에는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면 달러 공급이 확대되며 환율이 안정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는 수출대금으로 유입된 달러가 국내 외환시장에 풀리지 않고 해외로 다시 빠져나가는 '달러 잠김(Lock-in)'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또 해외 직접투자와 해외 자산운용 확대가 이어지면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체감되는 달러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 규모는 이미 600억달러(약 88조8000억원)를 넘어 사상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특히 10월 한 달에만 120억달러(약 17조7000억원) 이상이 해외 증권에 투입됐다. 해외 투자 흐름이 일시적이 아니라 일정 기간 지속되면서 외환시장의 수급균형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다.
DS투자증권 정형기 연구원은 "외환시장에서는 국민연금 등 공공부문의 해외 투자가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정부 부문의 증권투자와 월별 환율 변동 간 상관관계는 매우 낮다"며 "오히려 외화 수요를 실질적으로 키운 주체는 자산운용사,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기관과 개인투자자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이 급등한 9~11월 동안 개인과 자산운용사의 해외 주식 순매수가 환율 움직임과 거의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의 핵심에는 해외 투자 상장지수펀드(ETF)의 대유행이 언급된다. 최근 3년간 해외 ETF 시가총액은 매년 두 배씩 증가했고, 거래대금은 5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미국 증시 상승과 맞물리며 ETF 신규 설정과 기초자산 매입이 동시에 늘어나 환율 상승 압력이 한층 증폭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연말 특유의 계절적 외화 공급 부족도 환율을 밀어 올렸다. 연말 결산과 잔고 관리 과정에서 외화 공급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해외 투자 수요는 유지되면서 수급 불균형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환율이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게 상승하는 오버슈팅 국면이 형성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증권가는 "이러한 수급요인이 완화될 경우 환율 역시 점진적인 안정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는 '환율 2000원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도한 비관론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과거 강달러 국면에서도 선진국 통화가 장기간 100% 가까이 평가절하된 사례는 드물었고, 극단적인 환율 급등은 구조적 경제위기가 동반된 경우에 국한됐다는 설명이다.
통화정책 환경 역시 환율 급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 당분간 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지 않은 반면, 미국은 내년 중 금리 인하 사이클에 재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추가적인 환율 상승 압력은 점차 완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증권가는 내년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1350~1450원 박스권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율 급등 국면에서 셀 코리아 프레임에 매몰되기보다 수급구조 변화와 계절적 요인을 냉정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단기 변동성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구조적 불신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외환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적어도 이번 환율 급등을 한국 경제위기의 신호로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dschoi@fnnews.com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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