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고물가가 미국인 위협"… 美 내년 선거 화두는 ‘생활비 부담’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1 18:05

수정 2025.12.21 18:04

‘물가폭등’ 정치구호 앞세운 민주
유권자 공감얻으며 지방선거 압승
내년 중간선거에서도 승리 노려
지지율 하락 위기 트럼프는 반격
"높은 물가는 민주당탓" 책임 돌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에서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기 물가상승률과 올해 물가를 비교하며 자신을 겨냥한 '생활비 부담(affordability)'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에서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기 물가상승률과 올해 물가를 비교하며 자신을 겨냥한 '생활비 부담(affordability)'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물가 상승이 미국인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의 '생활비 부담(affordability)'이란 구호를 앞세운 미국 민주당이 '반(反)트럼프' 세력을 결집하며 정치판을 흔들어 대고 있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줄곧 무기력했던 이들은 뉴욕시장 선거 등 최근 일련의 선거에서 이 같은 주장을 앞세우며 선전했고, 새로운 정치 구호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지역·인종·성별 초월한 공감을 얻은 '생활비 부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연방 하원의원들의 공식 뉴스레터를 집계하는 웹사이트인 DC인박스 자료를 인용, 생활비 부담이라는 개념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2020~2025년 사이 하원의원들이 주고받은 e메일에서 생활비 부담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빈도가 올해 93건으로 관측 기간 중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해당 용어의 사용 빈도는 2021∼2022년 1건, 2023년 6건, 2024년 7건에 불과했다.

생활비 부담은 특히 미국 동부에서 지방 선거가 열린 지난달과 이달에 걸쳐 70건 이상 언급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4일 열린 뉴욕시장 및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생활비 부담 구호를 앞세워 압승을 거뒀다.

무슬림 이민자 출신으로 첫 뉴욕시장이 된 조란 맘다니 당선인은 지난달 선거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도시'라는 구호를 내걸고 최저임금 인상·무상버스·무상교육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에비게일 스팬버거 버지니아 주지사 당선인과 마이키 셰릴 뉴저지 주지사 당선인도 각각 '저렴한 버지니아' 계획과 '생활비 부담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생활비 부담이라는 단어는 과거 여러 정권에서 지적했던 '물가 상승' 걱정에서 한 단계 나아간 개념이다. 이는 미국인들이 과거 중산층의 삶의 기준으로 여겨졌던 대학 입학·주택 구입·은퇴 준비 등을 위한 자금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표현한 단어다. NYT는 해당 용어가 지난 여름을 거쳐 급속도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해당 용어가 과거 민주당이 내세운 '경제적 공정'이나 '경제적 불평등'같은 담론과 달리 전 계층과 지역·인종·성별을 초월한 공감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위기 느낀 트럼프, 즉각 반격

2기 정부 출범 이후 약 1년이 지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 진영의 결집에 서둘러 대응했다. 민주당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올리고, 건강보험개혁법(ACA)에 따른 공공의료보험(오바마케어)의 보험료 보조금을 종료하면서 생활비 부담을 악화시켰다고 비난했다.

이에 트럼프는 17일 대국민 연설에서 생활비 부담이라는 용어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기에 처음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파탄 직전에 놓었던 경제를 되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바이든 집권기였던 2022년 6월에 9.1%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뒤 내려가는 추세이며 지난달 상승률은 2.7%였다. 현지 매체들은 미국 정부가 10월 일시 업무정지(셧다운)을 겪은 탓에 정확도가 의심된다고 평가했다. CPI 상승률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 11월(2.1%)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그의 경제 성과에 회의적이다. PBS방송 등이 17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1440명 중 트럼프가 경제 운영을 잘 하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트럼프 1기와 2기 정부를 통틀어 가장 낮은 비율이다.

내년 11월 3일에 중간선거를 치르는 트럼프는 이달부터 벌써 선거 유세에 들어갔다. 중간선거에서는 미국 상원 100석 중 35석, 하원 435석 전부, 주지사 50석 중 36석 뽑는다.
공화당은 상·하원과 주지사 숫자에서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년에 이를 지킨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트럼프는 지난 9일 펜실베이니아주, 19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선거 유세를 열고 경합주 민심 수습에 나섰다.
트럼프는 민주당을 겨냥해 "그들이 높은 물가를 초래한 당사자들"이라며 "이제는 가짜뉴스와 함께 이번 선거가 '생활비 부담'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고 비난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