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당시 사법경찰, 직권남용 저질러"
[파이낸셜뉴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처형된 독립운동가 고(故) 이관술 선생이 79년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현복 부장판사)는 22일 통화위조 등의 혐의를 받았던 이 선생의 재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1940년대 국내 항일 운동으로 인해 여러차례 투옥돼 고문을 겪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지난 1946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1950년 처형됐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지난 1945년부터 다음해까지 이 선생 등이 조선공산당 활동 자금 조달을 위해 서울 소공동 근택빌딩에 위치한 조선정판사에서 6회에 걸쳐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의 위조지폐를 찍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재판부는 선고 전 유족 측과 검찰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재판부는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이었을텐데, 본안 심리를 거쳐 판결 절차에 이를 수 있게 노력해주신 청구인과 변호인 측에 경의를 표하고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중립적 입장에서 협조해 준 검찰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이 선생의 재판에서 유죄 입증에 채택된 증거들이 위법 수집됐다며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선생이 수사단계부터 법정진술까지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 피고인들의 진술이 사법경찰관들이 자행한 불법 구금 등으로 인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기초로 형성된 인신구속에 대한 조항을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공동 피고인의 진술은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자행한 불법 구금 등 직권남용죄 범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함이 명백히 인정된다.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거가치가 없는 증거들을 유죄 판단 근거로 고시한 재심 대상 판결문의 존재 및 기재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에 대해서 유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죄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최종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방청석에서는 방청객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선고 후 이 선생의 외손녀 손모씨는 "80년 가까이 된 지금 대한민국에서 무죄를 내려 준 것에 감사드린다"며 "이 사건은 미군정이 정치적 입장을 지키기 위해 민중을 탄압한 첫 번째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흔적들을 모두 지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선생의 외손녀 손씨는 지난 2023년 7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 재판부는 지난 10월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이 선생 측 변호인은 재심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다며 "피고인과 공동 피고인들을 불법으로 장기간 구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로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측도 무죄를 구형했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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