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데는 도파민이 필요하지만 사랑을 오래 지속하는 데는 옥시토신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사귄 지 3개월 된 60쌍의 커플을 모집하여 뇌의 옥시토신 농도를 측정했다. 6개월 후 이 커플들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을 때 옥시토신 농도가 높았던 커플은 여전히 함께 사귀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커플들은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연애 초기에 옥시토신이 얼마나 많이 분비되느냐가 사랑의 유효기간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계속 사귀고 있는 커플들은 싱글 남녀에게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옥시토신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 커플들은 대화 도중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짓거나 부드럽게 만지는 등의 다정한 행동을 훨씬 많이 했다.
옥시토신은 엄마로 하여금 모성본능을 갖게 하고 아이와 엄마의 유대를 만드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동물실험을 통해 옥시토신이 부모 자식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끈끈한 부부애에도 관여하는 것이 밝혀졌다. 앞서 도파민에서 언급했던 초원들쥐 연구가 대표적 사례다.
포유류 중 일부일처를 하는 종은 단 3%뿐이다. 그 희귀한 3%에 해당하는 종이 초원들쥐다. 과학자들은 초기에는 초원들쥐의 도파민 회로에 집중했지만 점차 도파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보게 되었다.
이들이 단 한 번의 짝짓기에 성공한 후 다른 암컷이나 수컷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살피고 상대방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몸을 비비며 위로하는 다정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친밀한 결속은 도파민 보상회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1992년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 신경생리학 연구팀이 조사에 나섰다. 이들은 평생 일편단심으로 사는 초원들쥐와 또 다른 일편단심 종인 소나무들쥐(pine vole), 그리고 평생 수많은 상대와 짝짓기를 하는 바람둥이 종인 목초지들쥐(meadow vole)와 산악들쥐(montane vole)의 뇌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일편단심 쥐들은 뇌의 변연전피질과 측좌핵, 시상, 편도체 등에 풍부한 옥시토신 수용체를 갖고 있었다. 반면에 바람둥이 쥐들은 옥시토신 수용체가 매우 적었으며 좁은 부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편단심 쥐들이 갖고 있는 옥시토신 수용체가 다량으로 분포돼 있는 곳은 보상회로였다.
그렇다면 옥시토신 역시 보상회로의 일부가 아닐까? 앞서 도파민을 위주로 보상시스템을 설명했지만 사실 보상시스템에는 도파민 외에도 글루타메이트, 가바, 에피네프린, 바소프레신, 세로토닌 등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물질들이 흥분과 억제의 전기 신호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우리 마음에 여러 욕망과 쾌감, 만족과 기쁨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도파민이 주는 보상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했을 때 얻는 쾌감이라면 옥시토신이 주는 보상은 조금 다르다. 옥시토신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교류, 결속, 유대에서 오는 따뜻함과 안정감, 신뢰를 보상으로 여긴다. 도파민이 물리적 혹은 육체적 보상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면, 옥시토신은 사회적 보상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
여자들이 사랑을 느낄 때 상대방을 꼭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몸을 만지고 키스를 하고 싶은 것도 옥시토신이 만들어내는 욕망이다.
대상이 다를 뿐, 이것은 엄마가 아이를 돌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남녀가 변함없이 오래 사랑을 유지하려면 마치 서로를 아이처럼 귀여워하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필요하다. 도파민의 열정적인 사랑은 길어야 2~3년 안에 식어버리지만 옥시토신의 아가페적인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이 바람기를 억제하여 부부애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일처로 사는 마모셋 원숭이에게는 ‘프로(8)-OT’라고 하는 변형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이것은 8번째 아미노산이 프롤린으로 대체된 옥시토신으로 포유류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변형인 ‘류(8)-OT’와 구조적으로 다르다.
미국 네브라스카대학 연구팀은 마모셋 원숭이 커플을 네 그룹으로 나누어 뇌에 각각 프로(8)-OT와 류(8)-OT, 식염수, 옥시토신 차단제를 주입하고 처음 보는 매력적인 이성 마모셋을 만나게 한 후 행동의 차이를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프로(8)-OT를 주입 받은 마모셋들은 다른 물질을 주입 받은 마모셋들에 비해 정조를 지키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재미있는 것은 정조를 지키는 방식에 암컷과 수컷의 차이가 있었다.
암컷들은 낯선 수컷을 외면하고 남편 옆에 붙어서 다정한 행동을 했지만, 수컷들은 낯선 암컷은 물론 부인 암컷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정조를 지켰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독일 본대학 연구팀은 현재 아무도 사귀지 않는 싱글 남성과 한 여성과 사귀거나 결혼 중인 남성들의 콧속에 옥시토신을 분사한 후 매우 매력적인 여성을 소개하고 단둘이 있게 했다.
결과는 두 그룹이 크게 달랐다. 낯선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친절하게 대한 것은 똑같았지만 여자친구나 배우자가 있는 남성들은 싱글 남성에 비해 낯선 여성으로부터 10~15센티미터 더 떨어진 거리를 유지했다. 이것은 옥시토신이 충만한 남성들은 스스로 매력적인 여성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한 여성에게 더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옥시토신을 흡입한 남성들의 보상회로가 연인 혹은 배우자의 사진에 더 활발하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남성들의 코에 옥시토신을 분사한 후 연인 혹은 배우자의 사진과 낯선 여성의 사진, 그냥 잘 아는 여자의 사진 등을 교차해서 보여주자 뇌의 보상회로가 연인과 배우자의 사진에 강하게 반응하는 것을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낯선 여성이나 친숙한 여성보다 현재 깊게 사귀고 있는 여성에게서 보상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남성의 보상회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단순한 육체적 매력이나 친숙함뿐만 아니라 깊은 유대감도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옥시토신 분비가 연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켜 보상 가치를 높여준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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