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손성진 칼럼

[손성진 칼럼] 맹목과 극단의 위험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2 18:34

수정 2025.12.22 18:45

사랑에 눈이 멀면 상대 허물 안 보여
맹목과 극단에 빠져 있는 한국 정치
맹종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중간계층 무시당하고 극단만 득세
유권자 정신차려야 정치 바로잡아
불의와 진실을 판별하여 행동해야
손성진 논설실장
손성진 논설실장

사랑에 눈이 멀면 어떤 허물도 허물로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맹목적 사랑이다. 실체를 감춘 상대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줄 안다. 결론은 파국이다. 철학자 칸트는 맹목을 '개념 없는 직관'이라고 했다.

직관은 감정으로, 개념은 이성으로 치환할 수 있다. 맹목에 빠지면 이성과 판단력을 잃고 정의와 불의를 분간할 줄 모르게 된다.

국가와 사회에서 맹목적 행동은 집단적 광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권력이라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정치의 선동 때문이다. 맹목은 지지자가 만들고, 정치는 맹목을 자양분으로 자란다. 아이돌그룹은 팬덤의 맹목적 사랑으로 부귀를 얻는 데 그치지만, 정치는 다르다. 세상을 권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탓이다. 맹목은 괴물정치를 탄생시켜 나라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감정에 휩쓸려 무분별하게 맹신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맹목적 환호'라고 했다. 집단의 환호에 매몰되면 어떤 충고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했다. "한 극장에서 멋진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배인이 나타나 관객들에게 외쳤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은 멋진 쇼가 곧 공연된다는 것에만 마음이 쏠려 무시했다. 지배인은 거듭 대피하라고 했으나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마침내 거센 불길이 극장을 삼켜버렸다."

맹목은 정치의 극단화를 부르고,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부른다. 한국의 정치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다. 비상계엄은 극단적 선택이었지만 그 전에 이미 우리 정치는 맹목과 극단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계엄의 혼란은 끝난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맹목과 극단은 더욱더 확신범이 되었다. 혼란이 잦아들기 어려운 상태다.

극단의 범람으로 중간층은 무시당하고 있다. 목소리 큰 사람들만 득세한다. 진실은 왜곡되고 힘없는 다수의 이익이 침해당한다. 자신만을 선으로 단정하고 상대를 악으로 몰아친다. 대중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가 어렵다. 집단적이고 몰감정적 특성 때문이다. 편가르기를 하며 정치는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소외감에서 탈피하고자 급기야 어느 한편에 가담한다. 자극적 미디어는 쉽게 대중을 낚아채는 도구로 활용된다.

괴물정치, 극단정치에서 특정 정당만 말하기는 어렵다. 여당은 법의 만능에 중독돼 있다. 법으로 국민을 지배하려는 것(rule by law)은 반민주적 권력남용이다. 걸핏하면 국민의 요구라고 하지만, 지지자라고 해야 정확하다. 반대하는 국민의 의사는 언급되지 않는다. 지지자가 다수이고 반대자가 소수라고 해도 전체 국민은 아니다. 소수의 의견은 말살당하다시피 했다. 맹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이런 정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극단적 선택'을 아직도 신봉하는 야당에서 한국의 미래를 기대하지 못한다. 팬덤정치, 괴물정치의 아류에 불과한 본색만 드러낸다. 과거에 얽매인 알량한 구애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정치의 패러다임의 변혁을 추구할 기회인데 말이다.

정치의 퇴행과 타락은 정치인들이 어쩔 수 없는 나라의 얼굴이라 세계적 수치다. 싸울 때 싸워도 나라 정책을 돌봐야 할 터인데, 참 후안무치다. 좋은 정책, 필요한 법은 뒷전이고 국가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제도들만 양산한다. 정책정치가 실종 상태인 것은 국가적 위험신호다. 정쟁의 멍석으로 사용되는 국정감사는 없애는 것이 낫다. 정부 정책은 숫자 부풀리기 경쟁 같다. 말만 앞세운 장밋빛 정책은 포퓰리즘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제품으로만 보인다.

결국은 동물 취급받으며 비하의 대상이 되는 우리, 대중, 유권자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대중이 자성하여 비아냥을 듣지 않도록 깨어나야 한다. 핵심은 맹목적 추종의 거부다. 옳고 그름과 진실을 분별해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아도 대의(大義)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이 되자. 편가르기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스스로 '팩트체크'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말 없는 다수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칭타칭 원로 소리를 들어도 숨어 있는다면 비겁하다.

한 해가 저문다. 곧 새해가 밝아올 것이다. 희망을 논하기 싫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 희망을 갖고 희망을 실현하는 것이 발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 올해보다 나은 새해 아닌가. 또 선거가 있고 정치판은 늘 그랬듯이 아귀다툼,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래도 길은 있다.
우리가 정신 차리면 썩은 정치도 바로 세울 수 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