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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처 업무보고 끝, 실행전 검증 필요한 대통령 지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3 18:33

수정 2025.12.23 18:33

생중계로 공직자 긴장감 높인 효과
재정적 여력, 사회적 파장 점검해야
정부 부처들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23일 해양수산부를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 동구 해수부 청사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뉴시스
정부 부처들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23일 해양수산부를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 동구 해수부 청사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뉴시스
정부 부처와 위원회, 공기업 등 228개 기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23일 해양수산부를 끝으로 종료됐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 해수부 신청사에서 "공직자는 주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고, 국민의 집단지성은 언제나 가장 현명한 해답을 찾아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6개월 뒤 전 부처 업무보고를 다시 받겠다고도 했다. 공직사회의 기강을 세우고 업무추진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이번 업무보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과정이 생중계됐다는 점이다.

국정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모두발언은 물론 토론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공직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업무보고는 부처 보고 이후 대통령이 큰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관계부처들이 세부 내용을 조율해 정책을 구체화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처 보고 직후 대통령이 정책의 세부 내용까지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부처와 대통령실의 부담도 함께 커졌다.

그럼에도 생중계 보고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다. 정치적 논쟁이나 지역 반발로 장기간 표류해 온 정책의 경우 대통령이 구체적 지시를 내림으로써 논의의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진척이 더딘 새만금 개발사업을 두고 "실현 불가능한 민자 유치를 전제로 계속 끌고 가는 건 맞지 않다. 도민을 희망고문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디테일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면 공직자들이 복지부동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성을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려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공개 지시가 충분한 검토 과정 없이 곧바로 정책 추진으로 이어질 경우 예상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불법 의료기관 운영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사법경찰권 지정을 지시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논란 가능성을 언급했음에도 공개 지시라는 특성상 그대로 이행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연명치료 중단 시 인센티브 제공 검토,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검토 등을 잇달아 지시했다. 하나같이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 이슈들이지만 타당성 검토와 사회적 합의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상태다.

대통령의 말은 한번 공개되는 순간 국정 운영의 주요 기준이 된다.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은 모두 지시사항으로 정리돼 관계부처에 전달되고 이후 이행실적에 대한 점검이 이뤄진다. 특히 전체 부처를 대상으로 한 연말 업무보고에서 나온 발언은 그 상징성과 무게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1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업무보고의 의미를 강조하며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고 말했다. 충분한 검증을 거친 민생법안이라면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수많은 공개 지시사항을 모두 그대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대통령실은 법적 타당성과 재정적 여력, 사회적 파장을 점검하는 조정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 부처 역시 대통령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실현 가능성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가감 없이 보고해야 한다.
무리한 정책 추진은 국정 운영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