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1년 6개월 유예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판단하면서도, 즉각적인 관세 인상은 미루며 미중 갈등을 관리하려는 기조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추가 관세 부과가 미뤄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중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당분간 완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지난 1년간 진행해온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관보에 게재하고,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0%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현재 적용 중인 중국산 반도체 관세율 50%는 유지되지만, 추가 관세 부과는 18개월 뒤인 2027년 6월 23일 이후로 미뤄졌다.
USTR은 중국이 비시장적 정책 등을 동원해 반도체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해외 시장이 중국산 반도체에 의존하도록 만들어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 즉각적인 추가 관세 인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미중 무역 협상 국면과 양국 간 관계 관리 기조가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의 대중 수출 완화 사례 등 최근 미국의 기조 변화도 이런 흐름과 맞물려 거론된다.
이번 유예 결정이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치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이른바 '레거시(구형) 반도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레거시 반도체는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최첨단 칩보단 자동차·가전·항공·의료기기·통신 장비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범용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레거시 반도체에 사업 역량을 집중한 구조는 아니어서, 관세 유예가 실적이나 사업 전략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다.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매출에서 레거시 공정 비중이 적지 않지만 중장기 전략의 중심은 첨단 공정에 맞춰져 있고, SK하이닉스도 8인치 웨이퍼 기반 레거시 파운드리를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으나 사업 비중은 제한적이다.
대신 업계에서는 이번 관세 유예 조치를 두고, 단기적인 수혜보다는 미중 간 긴장이 다소 완화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추가 관세 부과가 미뤄진 점은 일단 숨을 돌릴 여지를 줬다는 해석이다. 다만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간 기술 경쟁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닌 만큼, 향후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화해 무드가 이어지면, 사업 불확실성을 다소 덜 순 있다"이라면서도 "반도체는 언제든 미중 갈등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정책 변화 가능성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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