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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쿠팡사태, 또 그냥 지나가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4 19:28

수정 2025.12.24 19:28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2024년과 2025년 유통업계를 뒤흔든 뉴스 1위를 꼽는다면? 지난해는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를 앞세운 중국 모바일 커머스의 한국 유통시장 초토화 논란이다. 올해는 '미국계 기업'인 쿠팡 사태다. 이런 요약 정리에 부정할 사람이 있는가. 흥미로운 건 지난해 중국 모바일 커머스 논란이 올해 잠잠하다는 사실이다. 당시엔 법으로 규제한다는 둥 떠들썩했는데 요즘 이들 업체의 영업이 순탄하다. 아예 신세계는 알리바바와 손잡고 사업을 키운다고 한다.

한국 소비자는 과거 일을 잊은 듯하다. 그렇다면 쿠팡은 어떨까. "별반 다를 게 있을까"에 한 표 던진다.

질문이 틀렸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 해법도 틀리거나 애매모호할 뿐이다. 쿠팡 사태가 딱 그렇다.

첫째, 쿠팡을 겨냥한 죄목과 처벌이 뒤섞였다. 크게 핵심만 추려보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 새벽배송을 둘러싼 노동자의 과로사, 정계로비 의혹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해법은 공정위의 영업정지 조치 혹은 과징금 부과가 거론된다. 일각에선 공정위 조치가 거대 유통공룡이 된 쿠팡에 작은 흠집만 낼 뿐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시작된 집단소송도 있다. 미국 집단소송이 쿠팡에 입힐 타격은 크겠지만, 그 본질은 주주들의 손실이 핵심일 뿐이다. 어쨌거나 둘 다 개인정보 유출에 한정된 조치다. 만약 이 건이라도 정상적으로 페널티가 취해진다면 국내 여론은 새벽배송이나 로비 의혹과 같은 여타 이슈는 묻고 넘어갈까.

둘째, '외국 기업' 프레임이 낳는 허무함이다. 테무와 알리를 공격할 때는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가 앞섰다. 쿠팡의 경우 이번 논란이 터지기 전엔 '한국계 기업인 출신의 미국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우리 기업"이라 여기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 건을 계기로 수식어가 빠지고 깔끔하게 '미국 기업'으로 정리된 분위기다. 토종 기업과 외국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가. 국민기업이라는 네이버의 외국인 지분율도 한때 50%가 넘었다. 요즘 세상에 순수 국내 자본으로만 운영되는 대형 유통 플랫폼이 어디 있는가.

셋째, 유통산업발전법을 방치해서 쿠팡과 같은 외국 기업이 혜택을 누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뿐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오프라인 유통과 골목상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전자상거래법 등 별도로 있다. 이런 규제는 쿠팡만이 아니라 국내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오프라인에 집중해온 국내 유통업체들이 경영상 불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영전략은 순전히 그 회사 경영진의 판단 문제다.

넷째, 소비자가 동시에 택배 노동자인 현실을 직시하는 문제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비판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쿠팡 로켓배송을 이용한다. 택배 기사의 과로를 걱정하면서도 '새벽배송'을 클릭한다. 노동 문제에 분노하는 소비자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조다. 이처럼 윤리적 소비와 기업의 ESG 경영 이슈가 하나로 묶여 있는 사안이어서 해법도 간단치 않다.

소비자는 싸고 빠르고 편리하면서도 노동자를 잘 대우하는 유통 플랫폼을 원한다. 기왕이면 국내 기업이길 바란다. 이런 기업과 서비스를 누리려면 먼저 쿠팡 사태의 이슈를 냉철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치열하게 쟁점별 해법을 찾아야 한다. 궁극적으론 유통산업의 관점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제조업만 중요하고 유통은 국내 총생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산업 관점은 낡았다.
물류의 파괴력과 인공지능(AI)과 접목된 데이터 경제를 두 축으로 한 미래 산업이 유통이다. 이런 토양 위에서 산업의 진흥과 소비자 윤리가 균형 있게 설 수 있다.


분노는 당장의 쾌감만 낳을 뿐이다. 어제는 테무와 알리, 오늘은 쿠팡,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을까.

jjack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