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삼성 임직원들, 7년간 기술탈취
위기의식 갖고 후속조치 마련하길
위기의식 갖고 후속조치 마련하길
검찰이 밝힌 기술탈취 과정은 영화에서 볼 법한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삼성 출신들이 주도한 기술탈취는 CXMT 초창기인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D램 기술을 빼내는 과정에서 삼성 연구원을 지냈던 모씨는 600단계에 달하는 D램 공정 정보를 노트에 자필로 베껴 적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를 입력하면 보안시스템에 적발될 수 있다고 보고 아날로그 방식의 메모를 택한 것이다. 이들은 "항상 국정원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 "체포되면 하트 네 개(♥♥♥♥)를 전파하라"는 지시 문자를 공유하기도 했다. 기술탈취에 대한 죄의식은 애초부터 없었고, 수사 가능성까지 대비한 산업스파이들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때 한국 대표기업의 인재였던 이들이 이렇게까지 몰락한 것은 돈 앞에 이성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CXMT는 핵심인력을 영입 대상으로 삼아 퇴직 당시의 2~4배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했다. 개발실장급에게는 최대 30억원을 지급했고, 계약금 성격으로 1년치 연봉을 일시불로 주기도 했다.
이들의 기술탈취로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만 5조원가량의 매출이 줄었을 것이라고 검찰은 추산했다. 이는 D램 시장에서 한 해 수출물량 감소만 따져본 것이며, 실제 중장기적인 피해 규모는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D램 공정 기술탈취로 CXMT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져왔어야 할 생산과 수출 물량을 가져갔다. 무엇보다 기술격차가 컸던 CXMT가 국내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기술전쟁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산업스파이들이 수십억원을 받고 팔아넘긴 것은 일회성 손실로 끝나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였다.
이처럼 피해가 막대하지만 이들을 빠른 시일 내 엄벌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핵심기술이 빠져나갔음에도 범죄 혐의자들의 연봉 전액을 범죄수익으로 인정할지를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처벌 수위가 예상보다 낮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 현행법으로는 최대 15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5년 이내의 징역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해외 기술유출 건수는 2022년 12건에서 지난해 27건으로 급증했다. 산업스파이들의 '경제간첩' 행위가 나라의 미래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간첩법 개정안이 외국 기업에 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 행위까지 간첩죄로 처벌하게 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정부는 사후적 처벌뿐 아니라 산업기술 유출을 사전에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후속 조치도 서둘러야 한다. 기술을 빼앗기는 순간 미래를 잃는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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