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정비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

이종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5 18:19

수정 2025.12.25 19:21

이종배 건설부동산부 부국장
이종배 건설부동산부 부국장
한호건설은 서울 세운4지구 재개발 사업이 논란의 대상이 되자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 '깊은 후회를 하게 됐다'는 장문의 입장문과 함께 사업포기를 선언한 상태다.

이 회사는 세운지구 개발 초기부터 사업을 이끌었다. 남들이 어렵다고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뛰어들었다. 지역 주민·상인들과 끝없는 소통과 정책 변화 등 개발 진행 과정을 보면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세 명의 시장을 거치면서 구역 수만 놓고 봐도 '8곳→171곳→39곳'으로 부침을 겪은 것이 하나의 예이다.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심 재개발은 개발이익이 현실화될 때까지 길게는 20년 넘게 걸린다. 그 전까지 수익은 없는데 비용만 투입하는 셈이다. 가족들까지 다 뛰어들어 간신히 부도 위기를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끌고 온 세운4지구 재개발 사업은 정부가 최근 뒤늦게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면서 좌초될 위기에 휩싸였다. 세운지구의 경우 재개발 논의가 시작된 지 이미 수십 년이 흘렀다. 또 다툴 게 있을까 했는데 세운지구가 다시 '정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세운지구 프로젝트는 사실 여러 의미를 갖는다. 메가시티 서울 도심의 얼굴을 바꾸는 사업이다.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초대형 사업인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강북 발전이다.

개발 지형도를 보면 서울 강남은 재건축, 강북은 재개발이 핵심이다.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인 뉴타운만 놓고 보자. 강남 3구에서는 송파구 거여·마천 뉴타운이 유일하다. 재건축이 강남의 모습을 바꿔 놓고 있다면, 재개발은 강북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주요 원동력이다.

이 같은 강북의 재개발이 아예 멈춰 선 시기가 있었다. 지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약 10년간의 공백기가 그것이다.

당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을 폈다. 재개발 사업이 투기 조장은 물론 공동체 파괴, 주민 갈등, 젠트리피케이션 등 수많은 부작용만 만들어 낸다는 것이 당시의 설명이었다.

연구 조사에 따르면 총 389개 구역이 해당 정책으로 해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거의 대다수가 강북이다. 2015년에는 '주거정비지수제' 도입으로 구역지정 요건이 대폭 강화되면서 신규 지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재개발 구역 신규 지정은 '제로'였다.

정비사업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서울 고가주택 대표 주자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를 보자. '신반포3차·경남' 아파트 통합 재건축으로 조성된 단지로 지난 2023년 준공됐다. 사업성이 뛰어난 강남권 단지이지만 안전진단 통과(2002년) 이후 21년이 걸렸다.

강북권 뉴타운 정비사업 대표주자 가운데 하나인 용산구 한남동 '한남3구역 재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지난 2003년에 뉴타운지구로 지정됐다. 22년이 흐른 올해 이주를 마쳤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강남·북 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강북 재개발 공백기를 꼽고 있다. 강남의 노후단지가 새 아파트로 속속 탈바꿈하는 동안 강북의 주거환경 개선은 더디게 이뤄진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공백기가 현재의 강북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KB부동산 통계를 보자. 지난 2013년 4월 강북구의 ㎡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412만원, 강동구는 598만원 수준이었다. ㎡당 180만원가량 차이가 났다. 격차가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올 11월 기준으로 보면 강북구는 864만원, 강동구는 1856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992만원으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세운지구 개발은 단순히 문화유산 문제에 국한해 볼 사안이 아니다. 강북의 부동산 지도를 바꿀 수 있는 초대형 재개발 사업이다.
또 한국 사회가 협의와 타협 등을 통해 이 같은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ljb@fnnews.com 이종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