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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다카이치 입주하는 총리 공관..한 때 '귀신 출몰설'도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7 13:55

수정 2025.12.28 08:17

일본 도쿄 나가타초 소재 일본 총리 공관 전경. 출처=연합뉴스
일본 도쿄 나가타초 소재 일본 총리 공관 전경. 출처=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올린 X(구 트위터) 게시물. 그는 게시물을 통해 "위기 관리는 국가 경영의 요체"라며 "조만간 정든 의원 숙소를 떠나 총리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고자 한다"고 적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올린 X(구 트위터) 게시물. 그는 게시물을 통해 "위기 관리는 국가 경영의 요체"라며 "조만간 정든 의원 숙소를 떠나 총리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고자 한다"고 적었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취임 2개월이 지난 다카아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만간 중의원(하원) 의원 숙소에서 총리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관저(官邸·집무 공간)와 인접한 공저(公邸·공관, 고위 공무원 숙소)에 머물며 신속한 위기 대응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다만 일본 총리 공관은 쿠데타와 암살의 역사, 단명 정권 괴담이 얽힌 공간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상징성도 적지 않다.

1929년 당시 일본 총리 공관 사진.출처=스미토모 미쓰이 트러스트 부동산
1929년 당시 일본 총리 공관 사진.출처=스미토모 미쓰이 트러스트 부동산

■'관저 옆 신속한 위기대응' 한 때 9년간 비어 있기도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1일 X(구 트위터)에 "위기 관리는 국가 경영의 요체"라며 "조만간 정든 의원 숙소를 떠나 총리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1일 총리 취임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27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연말연시 휴가에 들어갔다. 휴가 기간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에 있는 중의원(하원) 의원 숙소에서 도쿄 치요다구 나가타초에 위치한 총리 공저로 이사할 예정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당초 조기에 총리 공관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취임 직후부터 외교 일정과 국회 심의가 이어지면서 이사 준비가 늦어졌다. 지난 8일 밤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발생했을 당시 그가 35분 뒤에 관저에 모습을 나타내자 신속한 위기 대응을 위해 거처를 빨리 공관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총리 공관은 총리 관저와 걸어서 1분 남짓 거리로 지진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국회의사당과 주요 정부 청사도 도보 5~10분 이내에 위치해 있다.

총리 공관은 1929년 당시 총리 관저로 마련된 2층짜리 석조 건물이었다. 현대건축의 거장인 미국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제국호텔에 영감을 받아 지어졌으며 총면적이 약 5200㎡에 달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재임 시절인 2002년 대대적인 개축을 거쳐 초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했고 2005년부터 총리 공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생활과 업무를 분리하고 싶다"며 차로 약 15분 거리인 도쿄 시내 자택에서 출퇴근하면서 총리 공관은 주인 없는 집이 됐다.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역시 의원 숙소에서 관저로 출퇴근했다.

총리 공관이 연간 1억6000만엔(약 14억7794만원)의 유지비가 들어가는 빈 집으로 남아 있자 야당에서는 "예산 낭비이자 위기관리 의식이 결여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9년 만인 2021년 12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공관에 입주했으며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도 취임 약 3개월 뒤 공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1932년 5월 16일자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실린 5·15 사건 기사. 당시 해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이누카이 쓰요시 당시 총리가 총리 공관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1932년 5월 16일자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실린 5·15 사건 기사. 당시 해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이누카이 쓰요시 당시 총리가 총리 공관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춥다'는 평가부터 '귀신 출몰' 괴담까지

총리 공관 입주를 꺼리는 이유에 대해 입주자들 사이에서는 "춥다" "너무 넓어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얼핏 듣기엔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만 일본 정가에서는 오랫동안 꽤 심각하게 회자하는 '귀신 출몰' 소문도 이유로 꼽힌다.

총리 공관은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 등이 습격당해 숨진 5·15 사건(1932년·쇼와 7년)과 총리 비서관 등이 희생된 2·26 사건(1936년·쇼와 11년)이 벌어진 현장이다.

1932년 5월 15일 해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이누카이 총리는 공관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1936년 2월 26일에는 ‘쇼와 유신’을 주장한 육군 청년 장교 약 1400명이 공관을 포위·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오카다 게이스케 총리는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경비병 4명과 여러 대신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사건들로 인해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원혼이 떠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일본 정가에서는 '공관에 입주하면 단명 정권으로 끝난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공관에 거주했던 총리 7명 가운데 5년 5개월간 재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제외한 6명은 1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조차 공관에서 1년간 머문 뒤 귀신을 쫓는 퇴마 의식을 치렀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FNN)에 따르면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재임 중 밤에 누군가 문 손잡이를 여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리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은 2000년 4월 5일부터 2001년 4월 26일까지 1년 남짓이었다.

하타 쓰토무 전 총리의 부인은 1996년 회고록에서 공관에 머무는 동안 억압적인 기운을 느꼈고 정원에서 낡은 ​​군복을 입은 귀신들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하타 전 총리는 1994년 4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단 64일간 재임해 일본 헌정 사상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오바케의 Q타로
오바케의 Q타로

■'푹 잘 잤다' 귀신 소문에 개의치 않는 총리들

반면 '귀신 소문'에 크게 개의치 않는 총리들도 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공관에서 주말 이틀을 보낸 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마음 편히, 제대로 잘 수 있었다"며 "귀신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은 2021년 10월 4일부터 2024년 10월 1일까지 약 3년이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도 입주 당시 귀신 소문에 대한 질문에 "'오바케의 Q타로' 세대라 별로 무섭지 않다"고 답했다. '오바케의 Q타로'는 196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귀신 만화로 이시바 전 총리와 같은 60~70대 세대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이시바 전 총리는 2024년 10월 1일부터 2025년 10월 21일까지 약 1년간 재임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