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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UAE '혈맹'에서 '숙적'으로…수단 이어 예멘서 대리전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8 06:57

수정 2025.12.28 06:57

[파이낸셜뉴스]

내전 중인 예멘 남부의 항구 도시 아덴에서 25일(현지시간) 남부 독립을 외치는 분파 '남부 전환 위원회(STC)'가 주도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PA 연합
내전 중인 예멘 남부의 항구 도시 아덴에서 25일(현지시간) 남부 독립을 외치는 분파 '남부 전환 위원회(STC)'가 주도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PA 연합

‘형제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수단에 이어 이번엔 예멘에서 양국의 대리전이 격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시간) 사우디가 UAE의 지원을 받는 예멘 남부 분리주의 분파인 ‘남부 전환 위원회(STC)’를 공습했다고 보도했다.

예멘 대리전

STC는 26일 사우디가 자국과 국경을 맞댄 예멘 중부 하드라마우트주의 STC 정예 병력을 목표로 삼았다면서 이번 공습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공습은 STC가 예멘 정부와 노선을 같이 하는 하드라마우트 분파를 공격하기 시작한 지 3주 뒤 이뤄졌다.

사우디는 예멘 정부를 지원한다.

STC는 아울러 오만 접경 지역인 예멘 남동부의 알-마흐라 주에서도 분파를 공격하고 있다.

사우디가 STC를 노린 것은 사실상 UAE에 대한 경고로 해석된다.

분석가들은 STC가 하드라마우트와 알-마흐라를 공격하는 것을 UAE가 사전에 몰랐을 리 없다면서 UAE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 공격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드라마우트는 예멘에서 가장 큰 지역이자 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으로 사우디와 끈끈한 사이다.

STC가 하드라마우트를 공격한 것은 사우디의 국가 안보 이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자 사우디의 예멘 내 역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수단 대리전

걸프협력기구(GCC) 양대 세력인 사우디와 UAE는 이집트 남쪽과 국경을 맞댄 수단 내전에서도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수단과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사우디는 수단 안정을 원해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홍해 항로를 지키고 난민 유입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정부군인 SAF를 지원하고 있다.

반면 UAE는 수단의 금광과 농경지, 그리고 홍해 주요 항구 운영권을 탐내면서 반군인 RSF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RSF가 수단의 주요 금광을 장악하고 있고, 이 금광에서 나오는 금이 UAE를 통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RSF를 지원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혈맹'에서 '숙적'으로

아랍 양대 세력인 사우디와 UAE는 전략적 동반자, 형제 나라로 혈맹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두 나라는 지역 패권을 다투는 치열한 경쟁자가 됐다.

가장 큰 배경은 경제적 주도권 다툼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는 ‘비전 2030’ 전략을 통해 사우디를 중동의 경제, 관광, 금융 허브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이 분야 1등인 UAE를 밀어내고 사우디가 그 왕좌를 차지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사우디에 경제적 이권을 빼앗기게 된 UAE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예멘 내전에서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예멘과 국경을 맞댄 사우디는 정부군을 도와 후티 반군을 몰아내고, 예멘 통합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UAE는 홍해와 아덴만 해상 항로 장악에 눈독을 들이면서 사우디와 늘어졌다. UAE는 STC를 도와 예멘 남부가 자신의 편으로 서도록 하고 있다.

사우디가 지원하는 정부군과 UAE의 후원을 받는 분리주의자 STC가 서로 총구를 겨누는 상황이 됐다.

자존심 싸움

양국의 갈등은 자존심을 건 싸움이기도 하다.

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MBZ) 알 나흐얀 대통령은 젊은 시절 사우디 왕세자 MBS의 스승 역할을 했다.

양국이 전통적인 동생(UAE)과 형(사우디) 관계에서 스승(UAE)과 제자(사우디) 사이로 탈바꿈 한 것이다.

그러나 MBS가 왕세자로 실권을 장악하고 독자 행보에 나서면서 이런 관계는 재정립됐다.

양국은 중동 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시작했고, 양국 지도자 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적과의 동침

예멘과 수단에서 대리전을 치르고는 있지만 사우디와 UAE는 같은 안보 이해를 가진 공동체 성격이 짙다.

이란이라는 거대한 공동의 주적이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완성하거나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UAE나 사우디 모두 존립 위기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꼴 보기 싫지만 계속 척지고 만 있을 수도 없는 운명 공동체인 셈이다.

미국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도 이 둘이 완전히 갈라설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은 이 두 나라 안보를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

사우디와 UAE 무기 체계는 미국산으로 이뤄져 있어 미국의 공급이 없으면 전쟁도 할 수 없다.

또 두 나라 모두에 미군이 상주하고 있다. 미군이 인계철선 역할을 해 두 나라 간에 직접 충돌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미군은 사우디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 등에 수천명을 순환배치하고 있고, UAE 알다프라 공군기지에도 약 3500~5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양국 장교들은 아울러 미군에게 훈련을 받고, 미군의 전술체계도 그대로 따른다.


패권 싸움 속에서도 양국이 끝내 갈라서지 않고 불편한 ‘적과의 동침’을 지속하는 이유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