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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AI시대, 전기 없인 경쟁 없다…세계가 마주한 탈탄소·안전과의 딜레마

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8 18:04

수정 2025.12.28 19:13

홍채완 국제부 기자
홍채완 국제부 기자
인공지능(AI) 붐은 전력 문제를 기술경쟁의 부수 조건이 아닌 핵심 전제로 끌어올렸다.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성·단가·공급 속도를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각국의 에너지 정책도 '이상'보다는 '현실'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경쟁에 제대로 뛰어들려면 7년 안에 20기가와트(GW) 정도의 AI 데이터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1GW급 원전 20기를 가동해야 가능한 전력량으로, 총 1400조원을 갈아 넣어야 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전기 먹는 하마'와 다름없는 AI 인프라 문제 때문에 전 세계가 고심 중이다.

독일은 원전 폐쇄 이후 석탄발전 폐지를 연기했고, 이후 추가 발전용량 확보에 나섰다. 스웨덴 또한 탈원전 이후 반복적인 정전 위험에 직면하자 가스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원전 재건설 및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추진 중이다. 스페인 역시 대정전 이후 재생에너지 출력제한과 가스발전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

아시아의 행보도 유럽과 다르지 않다.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대폭 축소했지만, 최근 AI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운영사 도쿄전력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가시와자키 원전 6호기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대만 역시 폐쇄된 원전 중 두 곳을 재가동하는 원전 현황평가보고서를 승인하는 등 전면 탈원전 기조에서 원전 재가동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TSMC 등 반도체 생산 관련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아예 30기 이상의 원전을 동시 건설 중이며, 올해만 2000억위안(약 41조2600억원) 규모의 신규 원전 10기를 승인했다. 다만 이 같은 추진력은 강력한 통제권을 가진 중앙정부 등 중국 사회의 고유한 특성에 기반한 것으로, 다수의 이해관계 조정과 숙의가 요구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그대로 모방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의 선택으로 돌아온다. 탈탄소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AI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원전 사고라는 비가역적 위험과 비용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 그 부담은 현세대가 질 것인지 미래세대에 떠넘겨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미완이다.
효율과 안전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에너지 정책의 난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