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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성실히 갚을까… 숫자에는 없는 정보가 리스크 줄인다 [한미재무학회, 석학의 제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8 18:22

수정 2025.12.28 18:21

은행 대출과 비정형 정보의 역할 감용규 아일랜드 국립 더블린大 교수
은행, 차주의 상환능력 정확하게 보려면
재무·신용등급·담보가치 등 수치 외에
성실성·경영능력 등 비정형 정보 살펴야
고객과 장기간 관계 유지하며 쌓이는
보이지 않는 정보 무시땐 '오류' 생겨
단순 체온으로만 코로나 진단하는 꼴
디지털 전환 시대, 지점들 점차 축소
차주의 실제 상태 정확한 판단 어려워져
AI가 대체하기엔 아직은 한계 '뚜렷'
대출 성실히 갚을까… 숫자에는 없는 정보가 리스크 줄인다 [한미재무학회, 석학의 제언]
대출 성실히 갚을까… 숫자에는 없는 정보가 리스크 줄인다 [한미재무학회, 석학의 제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정보이다. 새로운 경제지표가 발표되거나, 기업의 실적이 공개되거나, 국제정세와 관련된 짧은 뉴스 한 줄만으로도 자산 가격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정보의 영향력은 주식시장이나 자본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직접 대출을 제공하는 전통적 은행업에서도 정보는 의사결정의 출발점이자 최종 기준이다.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고 사후 관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정확하고 시의적절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돈을 빌리는 사람과 돈을 빌려주는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주 비정형 정보의 중요성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기 위해 은행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신청자의 신용도를 다각도로 평가한다. 이러한 절차는 고위험 차주에게 대출이 무분별하게 제공되는 역선택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를 기반으로 은행은 단순히 대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출 금액, 이자율, 대출 기간 등을 차주별로 차등적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심사만으로 모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용도가 높은 차주에게 대출을 제공하더라도 차주가 당초 약정이나 과거 투자패턴과 달리 대출자금을 고위험 프로젝트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으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 사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은행은 대출의 최초 실행 단계부터 최종 상환 시점에 이르기까지 차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 사후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은행은 대출 약정을 통해 차주의 신용 상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도록 요구하며 그 기준을 벗어날 경우 담보 추가 요구나 대출 회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은행이 차주의 현재 재무 및 경영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는지 그리고 그 정보를 사후관리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차주에 관한 정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분류하면 먼저 재무지표, 신용등급, 담보가치 등 수치화되거나 문서화된 정형 정보가 있다. 그러나 정형 정보만으로는 차주의 실제 신용 상태나 상환능력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차주의 신뢰성·평판·성실성·경영능력 등 비정형 정보 역시 신용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소상공인의 경우 정형화된 정보가 제한적이므로 비정형 정보를 통해 차주의 신용도와 재무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은행은 어떻게 비정형 정보를 확보할까. 은행은 주로 지점망을 활용해 차주와 장기간 거래 관계를 유지하며 정성적 평가를 통해 정형 데이터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차주의 성향, 해당 산업 및 지역 경제의 체감 경기흐름 등을 축적한다. 이러한 비정형 정보는 대출심사뿐 아니라 사후관리 과정에서도 적극 활용돼야 하며, 궁극적으로 대출 관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비정형 정보가 줄이는 제1종·제2종 오류

은행이 차주와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충분한 비정형 정보를 축적한 경우 차주의 재무지표가 대출 약정상 기준치에 미달하더라도 대출 이자율 조정이나 대출 회수와 같은 사후관리 조치가 상대적으로 적게 이뤄진다. 이는 해당 은행이 정형화된 정보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차주에 대한 다양한 비정형 정보를 장기간 축적하고 적시에 활용함으로써 재무지표 악화와 관련된 경고신호를 실제 차주의 신용도 변화가 아닌 일시적 현상이나 오류로 판단하고, 대출 재조정이나 회수와 같은 극단적 조치를 자제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정형화된 정보에 따른 경고신호만을 근거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제1종 오류(Type I error), 즉 거짓 양성(false positive) 가능성을 은행이 비정형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줄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제1종 오류, 즉 거짓 양성의 의미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코로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직접 경험했던 사례를 비유로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코로나 대유행 초기, 유전자증폭검사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여러 국가에서 체온을 기준으로 감염 여부를 추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모든 승객은 비행기 탑승 직전에 체온을 측정해야 했으며 체온이 기준(예: 37.2도)을 넘으면 탑승이 제한됐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음에도 체온이 기준치를 넘었다는 이유로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잘못 판단돼 억울하게 탑승이 제한됐다면 이는 전형적인 제1종 오류, 즉 거짓 양성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금융산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형 정보만을 근거로 재무지표가 기준치에 미달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질적인 신용도 변화가 크지 않은 차주에게 과도하게 대출 회수 등의 압박을 가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제1종 오류에 해당한다. 반대로 은행이 장기간 축적한 비정형 정보를 활용하면, 잘못된 경고신호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거짓 양성에 따른 불필요한 조치를 최소화함으로써 차주와 은행 모두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또 은행이 정형 정보에 주로 의존하는 경우와 비정형 정보를 폭넓게 활용하는 경우에 따라 대출 사후관리 방식뿐 아니라 차주의 실물투자, 부도 확률, 나아가 은행의 자본 적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랜 관계를 통해 은행이 차주에 대한 비정형 정보를 충분히 축적한 경우 불필요한 대출 약정 집행을 최소화해 관련 비용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은행의 자본 적정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차주 입장에서도 대출 재조정이나 회수로 인해 불가피하게 실물투자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 상대적으로 덜 내몰리게 된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은행과 차주 간 장기적인 관계가 불필요하게 유착을 강화함으로써 차주의 재무 악화 신호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대출 회수 등 사후관리 절차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달리 대출 약정 위반이 전혀 없는 차주를 대상으로 분석할 경우 비정형 정보를 충분히 축적한 은행이 오히려 추가 담보 요구나 대출 회수 등 약정 집행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착으로 인한 소극적 대출 약정 집행 가설과는 상반되는 결과로, 충분한 비정형 정보를 확보하면 명시적인 재무지표 악화와 같은 경고신호가 없더라도 차주의 상환능력 저하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는 제2종 오류(Type II error) 또는 거짓 음성(false negative)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비유하면 체온이 기준치를 넘지 않아 증상이 없는 코로나 감염자를 체온 측정만으로 음성으로 잘못 판단해 비행기 탑승을 허용할 수 있지만, 유전자증폭검사와 같은 추가 정보를 활용하면 무증상 탑승객의 실제 감염 여부를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 이러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상황과 같다. 결론적으로 은행과 차주 간 장기간 관계에서 축적되는 비정형 정보의 효과가 단순한 관계 유착에서 비롯되는 효과보다 은행의 대출 약정 집행 결정에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전환과 지점망 축소의 역설

모바일·디지털 뱅킹 확산으로 고객의 지점 방문 빈도가 감소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은행들은 지점망 통폐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지점 운영비용이 큰 데다 고객 방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점망을 유지할 유인이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효과가 단순한 비용 절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점망 축소는 은행이 차주에 대한 비정형 정보를 효과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능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은행은 오랜 기간 지점망을 통해 차주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에 대한 비정형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해 왔다. 그러나 지점망이 축소될 경우 이러한 정보 축적능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대출 사후관리 과정에서 제1종·제2종 오류가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즉 대출 약정상 재무지표 악화 등의 경고신호가 나타났을 때 충분한 비정형 정보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해당 신호가 일시적 현상인지, 오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차주의 상환능력 저하에 의한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은행은 비정형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정형화된 정보만으로 판단하게 되며 경고신호를 신용도 악화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해당 경고신호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더라도 은행은 이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해 건실한 차주에게 불필요한 추가 담보 요구나 대출 회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차주는 프로젝트의 중단이나 축소 등 불이익을 겪게 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지역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견해도 존재한다.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과 데이터 처리능력이 급속히 발전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은행의 비정형 정보 축적 및 활용 측면에서 인공지능이 과거 지점망의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은행 지점망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지점망을 통해 축적된 비정형 정보를 주로 정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온전히 처리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화되지 않은 비정형 정보를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까지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게다가 전산망 오류나 데이터 불완전성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형 정보를 효율적으로 축적하고 활용하는 측면에서 은행 지점망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차주에 대한 비정형 정보의 획득과 관리 측면에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은행의 지점망이 수행하는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간과할 경우 제1종 오류 또는 거짓 양성을 충분히 걸러내지 못하여 신용 상태가 양호한 차주가 부당하게 대출 약정 집행 조치의 대상이 되는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감용규 교수는 아일랜드 국립 더블린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재무·금융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융학 석사과정 전공주임과 금융시장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감 교수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금융기관의 운영 및 위험관리, 금융제도 안정성, 금융규제 영향 분석, 기업 재무, 지속가능 금융 등이다.
학계 진출 이전에는 금융감독원에서 자본시장 및 은행부문 감독·검사업무를 수행했다.

prid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