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美 내년 ‘고용제로’ 현실로… 사람 대신 AI 들여 비용 줄인다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9 18:08

수정 2025.12.29 18:07

CEO 66% "인력 축소 또는 유지"
불확실성 커지며 ‘기술 투자’ 집중
전문가 "AI 자동화, 노동력 대체"
생산성 높이지만 고용엔 악영향
美 내년 ‘고용제로’ 현실로… 사람 대신 AI 들여 비용 줄인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올해 기록적인 주가 상승과 견조한 경제 성장을 겪은 미국 기업들이 내년 신규 고용을 멈춘다는 관측이 나왔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상당한데다 인공지능(AI)으로 손쉽게 사람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현재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조직을 최대한 슬림하게 유지하면서 AI와 자동화 기술에 더 많은 업무를 맡기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이 이달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개최한 최고경영자(CEO) 행사에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66%는 내년에 인력을 줄이거나 현재 인원 규모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신규 채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은 3분의 1에 그쳤다.

인력 파견업체 켈리서비스의 크리스 레이든 CEO는 "기업들은 당분간 '지켜보자'는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보다 자본과 기술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미국의 올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 4.3%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3·4분기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며, 시장 예상치(3.2%)를 웃도는 수치다. 개인소비는 3·4분기 3.5% 증가하며 성장률을 2.39%p 끌어올렸다.

그러나 일자리 숫자는 경제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미국 실업률은 지난 9월 4.4%에서 11월 4.6%로 상승했다. 이는 2021년 9월 이후 4년 2개월 만의 최고치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견고한 국내총생산(GDP)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일자리 증가가 나타나는 현상은 향후에도 정상적인 모습일 수 있다"며 "AI 기반 생산성 향상이 고용을 늘리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AI 자동화가 경기 침체에 대응해 기존 노동력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경우 노동시장도 장기간 침체를 지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경제 성장과 고용의 엇박자를 주목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AI가 경제 성장과 생산성 증가를 촉진하는 동시에 일부 영역에서는 고용 약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일자리 증가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은 건강한 노동시장이 아니다"라며 "CEO들을 만나보면 모두가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고 있다. 대체 가능한 영역을 판단하기 전까지는 채용하지 않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AI는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영역까지 대체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연준 산하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컴퓨터·수학 등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에서 실업률 상승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메타와 구글은 2023년에 각각 2만1000명, 1만2000명을 줄였으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부터 각각 1만 명이 넘는 인력 감축을 예고했다. 웰스파고의 찰리 샤프 CEO는 "AI가 인력 구조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클 것"이라며 "완전한 대체는 아니더라도 업무 방식과 조직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저채용·저해고' 국면이 영구적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다만 AI 확산이 구조적 실업을 장기간 확대하는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같은 하방 리스크의 현실화 여부는 AI 기술 발전 경로에 달려 있으며, AI 자동화가 경기 침체 국면에서 기존 노동력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경우 노동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rid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