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기고] 다음 세대 위한 고귀한 나눔, 유산기부 이어갈 사회 법 제도 필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9 18:31

수정 2025.12.29 19:34

조미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조미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누군가를 돕는 일은 단순히 베풂을 넘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 믿습니다. 어딘가에서 나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어린 생명들을 떠올리며, 이 집에서 쌓아온 우리의 온기가 언젠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언장에 기부의 뜻을 소중히 적어 두었습니다. 비록 몸은 떠나도 이 집이 누군가에게 미래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그보다 더 보람찬 마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유언 공증으로 거주하는 집을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한 김일두 후원자의 말이다.

유산기부는 유언장 작성(유언공증), 보험 수익자 지정, 유언대용신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재산(현금, 부동산, 주식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경제적 가치가 다음 세대를 위한 나눔의 가치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더욱 특별한 기부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유산기부의 비중은 전체 기부액의 1% 미만으로 미국(약 8%)이나 영국(약 30%) 등 기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자식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려는 우리 사회의 문화 외에도 미비한 법 제도가 유산기부 희망자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선진국들은 상속세 감면 등 실질적인 세제 혜택을 통해 유산기부를 독려한다.

영국은 유산기부가 장기적으로 국가차원에서 유익하다는 재무부의 국책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1년 11월 '레거시10(Legacy10)'을 입법화했다. 유산의 10%를 기부하면 상속세의 10%를 감면해 최대 상속세 비율을 기존의 40%에서 36% 수준으로 낮추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유산기부 활성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유산기부 전문 연구단체 '레거시 포어사이트(Legacy Foresight)')에 따르면 이러한 법 제도에 힘입어 영국의 유산기부 규모는 1990년 8억 파운드(1조 5520억)에서 2024년 기준 약 45억 파운드(약 8조 6600억원)로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개인 재산의 10%를 기부해 상속세 10%를 경감해준다면 유산기부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53.3%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유산기부법이 도입된다면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전 계층에서 50% 이상이 유산기부를 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2025년 11월 한국갤럽 '2025 유산기부 인식 조사')

상속세 감면을 통해 개인의 유산기부를 유도하는 기부 선진국들에 비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국내에서도 상속 재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기부하면 세액 공제를 허용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도 일명 '유산기부법'이라 불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 논의가 시작됐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산기부의 제도적 뒷받침을 위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2006년부터 기부 희망자에게 △법률·세무·금융 전문가 상담 원스톱 서비스 제공 △유산기부 서약식 진행 및 기부증서와 감사패 수여 △명예의 전당 등재 △사업 성과 보고 등을 전개해 오고 있다.


개인의 선의로만 이뤄져 온 유산기부는 이제 사회 법 제도 안에서 충분히 지원받으며 이뤄져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 복지, 교육 등에 소중한 재원이 되는 유산기부가 더욱 활발해질 때 우리의 후손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을 물려줄 수 있다.


세대를 넘는 숭고한 나눔, 유산기부를 통해 나눔의 선순환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길 기대하며, 그 출발점인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에 사회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조미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