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지배구조 리스크보다 무서운 ‘관치’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9 18:43

수정 2025.12.29 18:43

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자신들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면서 계속 지배권을 행사하는데 그냥 방치할 일이 아니다."(이재명 대통령·12월 19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업무보고)

"지주 회장이 되면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심어 '참호'를 구축하는 분들이 있다. 이러면 오너가 있는 제조업체나 상장법인과 다를 게 없어 금융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이찬진 금융감독원장·10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국정 최고책임자와 금융감독 최고책임자가 연달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자 금융권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1호 타깃'이 된 BNK금융지주에 대한 현장검사에 돌입하는 한편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이찬진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경로가 다양화돼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금융회사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당국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지배주주가 없는 탓에 '주인이 없는 회사'로 인식된다. 최고경영자(CEO)가 '셀프 연임'을 하고, 이사회는 이를 견제하기는커녕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연임은 당연하고, 3연임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금융지주들은 지난 2023년 12월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발표된 이후 경영승계 절차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모범관행이 제시한 핵심 원칙에 따라 CEO 후보군의 관리·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 종합적·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마련했다. 임기 만료가 임박해서 승계절차에 돌입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수시·상시로 후보군을 관리하며,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 승계 절차에 들어갔다. 이제 시스템에 따른 승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고질적인 병폐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부에서는 폐쇄적인 후보군 관리 등 '깜깜이'가 여전하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국민이 맡긴 자금으로 수익을 낸다. 따라서 다른 제조·서비스 분야의 기업보다 공적인 성격이 강하게 요구되며,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지배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국이 나서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손보려고 달려든다는 점이다. 지배적 주주가 없을 뿐 금융회사도 엄연히 주주가 있는 민간기업이다. 어느 정도 금융당국의 통제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과도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금융당국을 거스를 힘이 금융회사에는 없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기본적으로 금융지주도 주주들이 지배하는 회사다. 경영 성과에 따라 주주들이 CEO의 연임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부패한 이너서클'을 몰아내면 그 자리는 과연 누가 채울까. 과거 사례를 되짚어 보면 전직 관료 또는 정치권을 등에 업은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금융당국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 이유다. '멀쩡한' 경영진을 정치권이나 금융당국의 입맛대로 교체했다가는 자칫 '관치' 리스크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금융회사는 소유구조 특성상 이사회, 특히 사외이사들에게 견제 기능이 집중돼 있다. 이사회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낙하산 줄도 끊어내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는 '완성'할 수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사외이사 연임을 제한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추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이틀 새 나온 얘기가 아니다.

제도적 장치는 이미 잘 갖춰져 있다.
새로운 제도를 추가하기보다는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blue7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