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거주지를 공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이번 사안을 이유로 협상 입장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종전 협상에 대한 기대감에도 다시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브로프 “국가 테러”… 젤렌스키 “키이우 공격 명분 쌓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 언론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28~29일 노브고로드 지역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거주지를 장거리 드론 91대로 공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방공망이 모든 드론을 격추했으며 인명 피해나 시설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사건을 “국가 테러 행위”로 규정하며 “무모한 행동은 응답 없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텔레비전 중계 발언에서도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연방의 또 다른 거짓말”이라며, 러시아가 키이우의 정부 건물이나 수도를 겨냥한 추가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갈등 없이 종전 협상에서 진전을 보이는 것이 러시아에는 실패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주장은 추가적인 러시아 공격을 위한 구실이자 평화 프로세스를 훼손하려는 조작이라며 국제 사회의 규탄을 촉구했다.
영토 문제는 ‘가시밭길’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에 많이 가까워졌고, 어쩌면 매우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영토 문제는 여전히 매우 까다롭다(thorny)”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직후 러시아가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미·우 간 협상 진전에 대한 견제 성격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26일 군에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공세를 계속하라고 지시하며, 종전 논의와는 별개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아직 통제 중인 동부 돈바스 지역의 잔여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군 철수를 재차 요구했다.
젤렌스키, 50년 안보 보장 요구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유럽으로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제안한 (안보 보장) 15년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시작된 러시아와의 전쟁을 고려할 때 러시아를 억제하기에는 너무 짧다”며 “30년, 40년, 나아가 50년까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은 플로리다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안보 보장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좋은 진전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첫날부터 작동하는 철통 같은 안보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 역시 크리스마스 기간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을 언급하며 “이제 러시아가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향해 나아갈 의지가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국방장관도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의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해야 하며, 푸틴이 강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문제와 러시아가 점령 중인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의 관리 주체가 여전히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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