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트럼프-빅테크 연대에도… 마가 세력 "AI 거부"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30 18:05

수정 2025.12.30 18:06

美정책에 기술기업 자본 활용 등
트럼프, 빅테크 CEO들과 동맹
마가 지지층, 검열 논란으로 불신
"여론·선거에도 영향 미칠수 있어"
AI로 인한 일자리 붕괴 우려도 한몫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핵심 역할을 했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트럼프와 빅테크 기업들의 동맹에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논쟁은 강경 마가 진영에게 단순한 정책 문제가 아니라 마가의 정체성과 향후 미국 정치의 향방을 가르는 '정치 전선'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갈등이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빅테크 밀월, AI 동맹의 탄생

29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와 빅테크 기업 간 연대를 집중 조명했다. 트럼프는 빅테크 기업 대표들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들이며 상호 이익이 되는 동맹 관계를 구축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주요 빅테크 대표들이 참석해 이목을 끌었고 지난해 9월에는 트럼프와 백악관 만찬을 함께했다.

트럼프는 이들과 협력을 통해 미국이 AI와 가상자산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국 우선주의 경제 정책을 관철하는 데 기술 기업들의 지원을 활용해 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엔비디아, 오픈AI, 오라클은 미국 내 데이터센터와 제조 프로젝트에 총 1조4000억달러(약 201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트럼프와 손을 잡으면서 규제 완화 기대와 정책 불확실성 완화라는 효과를 동시에 누렸다. 업계 친화적인 정책 기조 속에서 관련 빅테크 종목의 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마가 핵심 세력은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트럼프의 핵심 전략가이자 마가의 이념적 설계자로 평가받는 스티브 배넌이다. 배넌은 "마가 지지자들은 급진 좌파보다 기술 업계 종사자들, 즉 실리콘밸리에 대해 더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다"며 "마가 지지층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려 했던 기술 재벌들이 갑자기 대통령의 새로운 절친이 된 상황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가 진영이 빅테크에 불신을 갖게 된 출발점은 '검열' 논란이다. 마가 지지자들은 빅테크 플랫폼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보수 성향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제해 온 권력 주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에게 빅테크는 단순한 기술 기업이 아닌, 여론 형성과 선거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 행위자다.

■AI 공포, 마가 결집시키는 공통의 적

대표적 사례가 2020년 대선 직전 보수 성향 매체 뉴욕포스트가 보도한 헌터 바이든 노트북 기사다. 당시 트위터는 해당 보도를 '해킹된 자료'로 분류해 기사 공유를 차단하고 계정을 정지했다. 이 조치는 보수 진영에서 대선에 영향을 미친 검열이자 선거 개입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2021년 1·6 국회의사당 사태 이후 트럼프의 계정은 페이스북, 트위터(X), 유튜브 등 주요 플랫폼에서 일제히 정지됐고, 애플·구글·아마존은 보수 성향 소셜미디어 파를러를 앱스토어와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퇴출했다. 보수 진영은 이러한 조치들이 정부와 빅테크 간의 공조를 통한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일자리 문제가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가 진영에서는 AI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위기 중 하나로 인식한다. 의회에서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으며 배넌 역시 AI가 규제 없이 발전할 경우 대규모 일자리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마가 진영의 또 다른 축인 기독교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통제받지 않는 AI의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워싱턴 정치 엘리트, 월가 금융 자본, 실리콘밸리 테크 엘리트에 맞서는 마가의 반엘리트주의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배넌은 "AI로 사라질 일자리들이 결국 노동자 계층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며 "트럼프의 지지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