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은행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에 떠는 은행권

이주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30 18:08

수정 2025.12.30 18:33

당정, 배상한도 2천만원 추진
업계선 "단독 책임 방식 부담"
허위신고 등 도덕적 해이 지적
정부가 금융회사의 과실이 없더라도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피해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제' 입법에 속도를 낸다. 1500만~2000만원 선에서 보상한도가 정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태스크포스(TF) 당정협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앞서 민주당 강준현 의원과 조인철 의원은 지난 23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정부안을 토대로 민주당 TF가 입법화에 나선 것으로, 금융사의 고의·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 요건을 충족한 피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실이 없는 금융회사가 피해액을 배상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금융위는 영국 사례와 카드사 배상책임 등을 근거로 법제화를 추진해왔다. 영국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송금했어도 금융회사가 최대 8만5000파운드(약 1억6000만원)까지 배상토록 하고 있다.

은행권이 주목하는 배상한도는 법적 상한선(5000만원)을 두고, 시행령으로 1500만~2000만원으로 정하는 것이 유력하다.

강준현 의원은 금융회사의 배상한도를 최대 5000만원으로 설정하고, 조인철 의원은 배상한도 하한선을 1000만원으로 뒀다. 평균 보이스피싱 피해액과 금융회사들의 부담 등을 고려했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법적 상한선을 정해두고 피해 사안에 따라 금융위가 구체적인 배상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1500만~2000만원 수준에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추후 논의 과정에서 법적 상한선은 3000만원선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과실 배상제가 도입되면 은행권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막대한 배상 비용도 문제지만 허위 신고나 예방 의무 소홀 등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배상제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수사기관 공조 없이 은행 단독으로 책임지는 방식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보상책임을 면제하는 기준은 향후 협의를 통해 구체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안은 은행이 보이스피싱 방지 노력을 기울였거나 피해자의 고의·중과실이 있는 경우 은행의 배상책임을 면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면책 판단 과정에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모호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배상제도가 보이스피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영국의 경우 사후배상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급자 승인형 푸시 결제사기(APP) 피해액 규모가 도입 전 보다 37.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 건수는 줄었지만 범죄가 대형화되면서 이 같은 양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들은 지연이체 서비스, 이상거래탐지(FDS) 기능 등 사전예방조치 고도화를 근본적인 해법으로 보고 관련 조치에 나서고 있다.

zoom@fnnews.com 이주미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