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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7천억불 수출탑 무너뜨릴 반도체 산단 이전 발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30 19:16

수정 2025.12.30 19:16

기후부 장관 "전기 많은 지역으로"
한창 건설 중인 단지… 황당할 뿐
29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7000억달러 고지를 밟았다. 산업통상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1시 기준 올해 누적 수출액이 7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정부의 첫 수출이 시작된 이후 77년 만의 일이고, 전 세계 여섯번째 기록이다. 지금까지 연간 수출 7000억달러를 넘긴 국가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뿐이다.

저성장 터널에 갇힌 한국 경제에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소식이다.

미국발 관세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가 어느 때보다 거셌던 올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7000억달러 수출탑을 쌓아 올린 핵심 기둥은 역시 반도체였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맞물려 기대 이상의 수요가 몰리면서 한국 반도체는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인 우리로선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호기를 살리려면 초격차로 추격자를 따돌리고 확고히 선두를 굳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은 물불 가리지 않고 기술추격에 나서 이미 반도체까지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의 반도체 영광을 되찾으려는 일본도 만만치 않고, 파운드리(위탁생산) 제국을 완성한 대만의 수성 의지도 강고하다.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인적·물적 인프라를 정부가 대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다른 국가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세제 지원도 미진하고 노동의 유연성 측면에서도 뒤떨어진다. 그중에 전력은 AI 산업을 뒷받침하는 필수적 기반이다. 전력은 기후나 날씨에 따라 간헐적으로 제공되는 식이 아니라 항시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고려해 설계된 곳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업체들이 지금까지 용인 산단에 투입한 자금도 천문학적인 규모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공장은 2027년, 삼성은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처음 윤곽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많이 늦은 일정이다. 그런 만큼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사업을 밀어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토지 보상과 남은 전력·용수 문제는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일사천리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용인 산단 지방이전 발언을 사업 관련 주무장관이 했다는 사실은 기가 막힌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금이라도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이라고 언급했다.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말로 한발 빼기는 했지만 황당하고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발언이다.


공급이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는 반도체용 전력으로 적합하지도 않다. 그뿐만 아니라 반도체는 고급 두뇌들의 기술개발과 주변 협력업체들의 유기적 생태계가 있어야 생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뚱딴지같은 용인 산단 이전 발언은 어렵게 쌓은 반도체 수출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