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단 해보세요"..뇌경색으로 쓰러진 33살 광고쟁이, 빵 굽다 교수님 된 사연 [괜찮아, 다시 인생]

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4 07:00

수정 2026.01.04 07:00

['지르는 인생' 유기헌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잘나가던 광고 기획자, 33살에 삶의 방향 전환
38살엔 백수, 40살에 일본 건너가 제빵 유학
연남동 '브레드랩' 오너에서 대학 강단으로
33살에 찾아온 뇌경색은 그의 삶을 바꿨다. 광고쟁이로 살아오던 그는 연남동 빵집 사장으로 이름을 알렸고, 쉰이 훌쩍 넘은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그는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진=유기헌 제공
33살에 찾아온 뇌경색은 그의 삶을 바꿨다. 광고쟁이로 살아오던 그는 연남동 빵집 사장으로 이름을 알렸고, 쉰이 훌쩍 넘은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그는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진=유기헌 제공
“33살 7월 1일 새벽이었어요. 오른쪽 몸이 마비되면서 뇌경색이 왔죠.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갈 수 있어서 후유증 없이 퇴원할 수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죽음의 문턱을 넘고 나니 돈이나 성공에 대한 개념이 송두리째 바뀌더군요.”

[파이낸셜뉴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판에서 10년을 치열하게 살았던 남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병마는 그의 인생 시계를 강제로 멈춰 세웠죠. 한때는 광고 기획자, 한때는 연남동의 전설적인 빵집 ‘브레드랩’의 오너, 지금은 학생들에게 ‘업(業)’의 본질을 가르치는 교수로… 인생의 변곡점마다 과감한 ‘새로고침’으로 제2, 제3의 인생을 살아온 유기헌 교수(58·청강문화산업대 푸드스쿨) 이야기입니다.

베트남행 비행기 대신 선택한 ‘백수의 길’

"하고 싶은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딱히 꿈도 없었던 사람"이었던 유 교수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무작정 사회로 나왔습니다. 스스로 '운 좋게 들어갔다'고 표현할 만큼 이름 있는 다국적 광고회사에 취업했고, 꽤 큰 광고주들을 상대로 성과를 올려가며 재미있게 일했죠. 그러다 IMF 때문에 작은 에이전시로 옮겼고, 그 회사에서도 독립해 나오면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은 피웠을 만큼 힘들었던 바로 그때, 뇌경색이 찾아왔던 거죠.

무사히 뇌경색을 이겨낸 후 그는 광고계를 떠났습니다.

이후 작은 카페, 요거트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을 거쳐 사업에 재미를 붙여가던 중, 광고대행사 시절 지인과 함께 베트남에서 큰 사업을 벌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시사철 더운 베트남에서 제대로 판을 벌려보자는 이야기였죠. 투자만 하면 '마이다스의 손'처럼 승승장구하던 지인의 제안은 더없이 매력적으로 들렸고, 일도 순조롭게 진행돼 출국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38살의 유기헌은 공항 대신 ‘백수’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왔다갔다 했을 때도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마지막 답사 때 문득 ‘여기서는 못 살겠다, 돈은 벌겠지만 내가 행복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그리는 행복은 거기 없을 것 같은 거죠. 한 달 동안 고민한 것 같아요. 그래도 결국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 포기하고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그렇게 38살에 다시 백수가 된 겁니다.”

그때 처음으로, 유 교수는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기술은 없을까?’ 38세라는 나이에도 '제대로 배워서' 시작하자는 마음이 컸던 그는 파스타, 목공, 제빵의 세 가지 후보를 마음 속으로 떠올렸습니다. 술을 못 마시니 마리아주가 중요한 이탈리아 요리는 어려울 것 같아 파스타를 먼저 지웠고,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목공도 지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남은 건 '빵'이었죠.

40살 막내의 일본 제과학교 도전…스무살 어린 동기들의 ‘아빠’가 되다

늦깎이 도전은 무모해 보였지만 유 교수는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글로벌 요리·제과·제빵 교육기관 르 꼬르동 블루-숙명 아카데미 제과 디플로마를 중급 과정까지 수료한 그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 덜컥 일본 유학까지 결정했습니다. 나이 사십에 취직 후 경력을 쌓아 나가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느낀 데다, 제과 수업 도중 배운 제빵 쪽에 더 재미를 느꼈던 까닭입니다.

일본 동경제과학교 유학 당시 유기헌 교수(오른쪽) /사진=유기헌 제공
일본 동경제과학교 유학 당시 유기헌 교수(오른쪽) /사진=유기헌 제공

“가장 빨리 유학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니, 일본어능력시험(JLPT) 2급을 따면 어학원에 다닐 필요 없이 바로 면접을 볼 수 있더라고요. 39살 여름부터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해서 결국 40살 1월에 일본에 건너갔어요. 그렇게 입학한 동경제과학교에서는 저를 ‘아빠’라고 부를 만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기들과 함께 공부했죠. 하필이면 당시에 환율이 폭등하고, 돈이 없어서 밤 12시까지 마트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도 빵집에서 일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당당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네요. 오롯이 나 하나만 건사하며 무언가에 미쳐있던 시간이었으니까요.”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여의도 지하의 작은 빵집 '브레드피트'를 거쳐 연남동에 ‘브레드랩’을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도전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죠. 화려한 기교 대신 식사 대용의 담백한 빵을 내세운 그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며 연남동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했거든요. 광고쟁이의 감각과 제빵사의 성실함이 빚어낸 결과였죠.

“인생은 한 방… 겁낼 시간에 저질러라”

하지만 또 한 번, 건강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10년 넘게 빵을 굽다 보니 오른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목 디스크가 온 겁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아, 이제 좀 쉬어야 될 때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얼마 쉬지도 못했을 때, 운명처럼 새로운 삶의 기회가 그에게 손짓했습니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교수를 찾던 대학의 교수직에 지원하게 된 겁니다.

“석박사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의 경력 하나 없는데 면접을 봤어요. 다행히 제 경험들을 잘 봐주셨는지 운 좋게 3년 전부터 강단에 서게 됐죠. 나중에 교수님들에게 들으니 ‘전임 교수가 되는 건 우주가 도와줘야 한다’고 하실 만큼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 당시에 학교가 필요로 하던 사람과 제가 마침 잘 맞아 떨어졌던 거죠.”

지금 그는 학생들에게 레시피보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것을 만드는 기획력’이라고 가르칩니다. 광고와 제빵, 전혀 다른 두 영역이 제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셈이죠. 하지만 교수로 보내는 지금의 인생 역시 그에게 마침표는 아닌가 봅니다. 언제나 뭔가를 새로 시작해야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아간다는 유 교수는 "100세 시대인데 제4의 직업이 또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습니다. 이미 직업을 세 번이나 바꿨는데도 도전할 각오를 멈추지 않는 원동력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2, 제3의 인생을 산 유기헌 교수는 지금도 제4의 인생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사진=유기헌 제공
제2, 제3의 인생을 산 유기헌 교수는 지금도 제4의 인생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사진=유기헌 제공

“뇌경색으로 한 번 죽다 살아난 만큼, '두 번째 사는 인생이라 이렇게 저지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은 가끔 해요. 하지만 늘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도전하는 걸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은 치열하게 하되, 결정은 확실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유 교수의 꿈은 소박합니다. 은퇴 후엔 다시 작은 빵집 주인이 되거나, 어딘가에서 설거지를 하는 단순한 삶을 꿈꾸고 있죠. 제2, 제3의 인생을 지나 제4, 제5의 인생까지 생각하며 지낸다는 유 교수의 달콤한 인생은 아직도 거침없이 흘러가는 중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