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여행을 두려워하기도 하더군요."
'양심 냉장고',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나는 가수다' 등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으로 한국 방송 예능 프로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1일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북토크와 강연을 다니며 젊은 세대의 여행 문화 변화를 체감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서일까. 그간 100개국에 달하는 나라를 여행하며 인생을 깨달은 그로서는 '인생이 곧 여행'이라는 말을 젊은 세대에 자주 해주고 싶어 한다. 이러한 여파로 올해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얻은 지혜를 유쾌하게 담은 여행 에세이를 준비 중이다.
앞서 김 PD는 지난해 출간한 '짐 챙겨 - 쌀집아저씨 김영희 PD의 유쾌한 여행썰'(상상)을 통해 일본과 중국,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까지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닌 우여곡절의 에피소드를 그려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여행을 소재로 한 책을 낸 이후,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고 싶지만 선뜻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크게 두 부류를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는 아직 많이 떠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묻고 싶어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출발하지 못해요. 그럴 때 저는 늘 말합니다. '떠나라. 괜찮다'고요."
김 PD는 "요즘 시대에 여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는 여행을 단순한 휴식이나 소비가 아닌, 삶의 방식 그 자체로 규정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에너지를 얻는다거나,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표현은 정확하지 않아요. 인생은 애초에 여행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디를 다녀오는 여행'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의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죠."
그는 '인생은 연극이고, 주연 배우는 나'라는 비유처럼, 인생을 여행에 대입하면 '여행자는 결국 나 자신'이라고 부연했다. 즉,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떻게 걷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 PD는 최근 여행이 '대리만족'으로 소비되는 현실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진과 영상, 책으로 보는 여행은 어디까지나 간접 경험일 뿐,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다녀와야 삶이 풍족해집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마주해야 비로소 내 인생이 확장돼요. 실제로 떠나지 않으면, 그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구경하는 겁니다."
그의 이런 인식은 PD로서의 커리어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MBC 입사 이후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을 계기로 세계가 빠르게 확장됐다고 회상했다. 대만, 태국을 시작으로 여행의 반경은 점점 넓어졌고, 그 과정에서 삶과 일 모두에 새로운 색이 입혀졌다는 설명이다.
"저는 원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며 사는 사람인데, 여행이 제 성향과 정확히 맞았어요. 그래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니고 싶어졌죠."
김 PD가 특히 강조하는 키워드는 '혼자 하는 여행'이다. 그는 유럽 2개월 배낭여행,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각각 3개월간의 단독 여행 경험을 통해 이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결국 혼자입니다. 결혼을 해도, 가족이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은 늘 혼자죠. 여행도 똑같아요. 혼자 떠나야 진짜 여행이 됩니다."
물론, 그는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여행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여행 중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나절이든, 하루든, 혹은 잠깐의 산책이든 혼자 걸어보는 순간이 있어야 여행이 여행다워진다는 것이다.
"여행에는 고독한 순간이 필요해요. 그 순간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인생에서도 그렇듯이요."
김 PD는 휴가와 여행을 명확히 구분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쉬기 위해 떠나는 휴가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행’이라 부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짜 여행을 하려면 휴가를 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혼자 떠나기 어렵다면, 휴가지에서도 하루 정도는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길 바랍니다.”
김 PD는 올해 안에 출간할 신간을 통해 이러한 여행 철학을 본격적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지난해 그는 중국과 알제리를 다녀왔고, 알제리 사하라 사막 여행은 특히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다고 전했다. 가을에는 뉴욕, 시애틀, 토론토, 밴쿠버를 거쳐 북미를 횡단했다.
올 봄에는 일본과 동유럽, 6월에는 한 달간 남미 여행이 예정돼 있다. 특히 남미에서는 '두 번째 여행의 감정'을 기록할 계획이다.
"볼리비아 소금사막은 한국 여행자들에게 꿈의 성지입니다.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은 이미 썼어요. 그런데 두 번째 갔을 때는 전혀 다른 감정이 들 수 있거든요. 그 감정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어 그는 쿠바 하바나 역시 다시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보는 세상은, 첫 번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김 PD가 방문한 국가는 80여개국. 그는 자신을 "대한민국에서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중 상위 몇 퍼센트 안에는 들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여행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삶은 확장되지 않습니다."
한편, 김 PD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양심 냉장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비롯해 '칭찬합시다',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나는 가수다' 등 한국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을 기획한 최고의 PD로 손 꼽힌다. 특히 재미와 공익을 동시에 잡는 획기적인 예능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상, 서울시장상, 한국방송대상, PD대상, 백상예술대상, ABU특별상, 골든로즈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 별명은 그의 첫 연출작인 '이경실의 도루묵여사'에서 개그맨 이경실이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면도를 하지 않은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 마치 쌀집 아저씨 같다고 놀린 데서 붙여졌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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