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전 트럼프 행정부가 '제네시스 미션(Genesis Mission)'이라는 행정명령을 내놓았다.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를 의미하는 '제네시스'라는 명칭에는, 미국이 인공지능의 새로운 출발점을 스스로 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미국의 모든 국가 연구소와 공공 데이터를 결집, 공개 데이터 중심으로 발전해 온 기존 인공지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초인공지능 구축에 나서고 있다. 기존 '수재'급 인공지능을 넘어 일종의 '과학영재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도약도 만만치 않다.
이 거대한 미중 AI 패권 경쟁은 결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과 다수의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해 온 한국에 중국의 추월은 이미 뼈아픈 현실이다. 디스플레이와 화학 산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중국은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며, 한때 한국의 강점이었던 영역들조차 우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AI 경쟁에서 뒤처진다면 이것은 신산업의 문제를 넘어 기존 제조 경쟁력 전반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작년 한 해 정부는 'AI 3강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인공지능 분야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왔다. 국가 AI 프로젝트 추진, 연구개발 투자, 인력 양성, 스타트업 지원 등을 통해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겠다는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주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문제인식과 전략적 방향 설정 측면에서 이전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앞으로의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 전력 인프라와 컴퓨팅 자원, 인재의 안정적 정주와 같은 요소들은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지만 기술경쟁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토대다. 대한민국이 기술 종속국이 아닌 전략적 플레이어로 남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전력과 컴퓨팅 인프라를 국가 전략자산으로 인식하고, 반도체 경쟁력을 외교적·산업적 지렛대로 확장해야 한다. 동시에 제조·물류·로봇 등 강점을 지닌 산업 분야의 버티컬 AI를 선점, 미중 사이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AI는 더 이상 미래 산업의 하나가 아니다. 국가 체제의 경쟁력과 안보, 산업 생태계 전반을 좌우하는 기반이다. 향후 몇 년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질서의 규칙을 따르는 나라로 남을지, 아니면 스스로 규칙을 제안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도약할지를 가르는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그 방향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일관된 실행력이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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