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넘어 희토류로 확장되고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와 풍력발전 터빈, 반도체 공정, 방위산업 핵심 부품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전략 광물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은 희토류 수출통제 1년 유예에 합의했으나 이는 일시적 조치일 뿐, 중(重)희토류에 대한 통제 기조와 중국 중심의 정제·가공 독점 구조는 여전히 공고해 중·장기적 공급망 불안정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희토류의 본질은 '채굴'이 아닌 '가공'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30일 부산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갖고 '스몰딜' 후 관세·무역전쟁 '확전 자제'에 합의했지만 근본적 갈등 요인 해결까지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중국에 부과했던 관세 일부를 줄이고 양국이 지난 9월 이후 내놨던 수출통제 조치를 거둬들이는 수준으로 압박을 줄였다.
하지만, 내년 4월로 예고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때까지 힘겨루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확전은 피했지만 정치적 합의에 따른 ‘관리된 휴전’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희토류 전쟁의 핵심은 매장량이 아니라 가공 능력이다. 미국, 호주, 베트남, 브라질 등도 상당한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채굴 이후의 정제·분리·가공 단계에서 중국은 세계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와 풍력발전에 필수적인 네오디뮴·디스프로슘 계열 영구자석은 중국 의존도가 사실상 절대적이다.
중국은 환경 오염과 낮은 수익성을 감수하며 수십 년간 희토류 정제 산업을 집중 육성해 왔다. 서구 국가들이 환경 규제와 비용 문제로 산업을 포기한 사이, 중국은 기술·설비·인력을 축적했다. 이로 인해 희토류는 중국에게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외교·안보 갈등 시 활용 가능한 전략적 지렛대로 자리 잡았다.
쉽지 않은 미국 중심 공급망 개편 추진
미국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인식하고 자국 중심의 희토류 공급망 재건에 나서고 있다. 캘리포니아 마운틴패스 광산을 운영하는 MP Materials는 미국 내 희토류 채굴 재개의 상징적 사례다. 미 정부는 국방 예산과 보조금을 통해 희토류 채굴과 일부 정제 공정을 국내로 유치하고, 호주·캐나다·유럽연합(EU)과 동맹 공급망 구축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채굴량이 늘어도 정제·분리·자석 제조까지 이어지는 완결형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환경 민원과 지역 반발도 변수다. 이 때문에 미국은 ‘탈중국’을 외치면서도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중국산 희토류와 자석에 의존하는 이중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달리 희토류는 대체 기술 상용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단기간에 중국의 우위를 무너뜨리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희토류 공급망 불안은 에너지 전환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용 영구자석 모터와 해상풍력 터빈은 고성능 희토류 자석 없이는 효율과 내구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공급 차질이나 가격 급등은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 가격과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준다.
방위 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레이더, 미사일, 위성 시스템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대체재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주요국들은 희토류를 석유·가스와 유사한 전략 비축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이 관리 국면에 들어서면서 희토류 공급망의 단기 불확실성은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합의에 따른 일시적 안정일 뿐, 중국의 가공 독점 구조와 지정학적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술 대체와 공급망 재편은 중장기 과제이며, 그 사이 희토류는 계속해서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과제, ‘광물 안보’의 현실화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2023년 기준)이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준(27.6%, OECD 평균 약 15.8%)이지만, 산업 원료가 되는 광물 자원의 국내 부존이 부족하여 핵심광물을 포함한 주요 원료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은 희토류 전쟁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전기차·배터리·반도체·풍력 등 주력 산업이 희토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 패권전쟁의 영향권에 있다. 동시에 중국 의존도가 높아,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도 강원·충남·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희토류 매장 사실이 확인되고 있으며, 보고된 매장량은 약 2597만 톤에 이른다. 그러나 평균 품위(grade)가 약 2.1% 수준으로 매우 낮아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며, 실제 경상가격 기준으로 환산한 매장 희토류의 가치도 약 8억 원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 차원에서는 조달선 다변화와 재고 관리로 단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중장기 전략은 정부 정책과 연계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2월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을 시행했다. 희토류를 비롯한 핵심 광물을 더 이상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에너지·산업·외교·안보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석유 비축 제도가 과거 에너지 위기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었다면, 이 법은 전기차·풍력·반도체·방산 시대의 새로운 안보 장치다.
후속조치로 산업통상부는 12월 초 김정관 장관 주재로 제1차 자원안보협의회를 개최하면서 핵심공급·수요기관을 지정했다. 정부는 핵심공급·수요기관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민관합동 위기대응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희토류 전쟁이 일시적으로 봉합되더라도, 공급망을 둘러싼 구조적 취약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한국에게 이 법은 위기에 대비하는 보험이자, 에너지 전환과 첨단 산업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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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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