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해 말 허위·조작 정보를 규제한다는 취지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미국 국무부가 이 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이 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국 언론의 질의에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의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표현의 자유를 약화하는 네트워크법 개정안을 승인한 데 대해 중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세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네트워크법 개정안은 딥페이크 문제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미국 측의 비판에 대해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일 "우리 입장을 잘 알려가겠다"고 밝혔다.
개정 정통망법은 허위·조작 정보 유통을 근절한다는 명분 아래 이를 유포한 언론사나 유튜버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다.
그동안 정통망법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 법이 한국 내부의 규제에 그치지 않고 자국 빅테크 기업의 사업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미 정부가 자국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려는 외국 정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비판 역시 그런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국내에 국한됐던 입법 사안이 통상 갈등이라는 외부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허위 정보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디지털서비스법을 도입하자 미 국무부는 해당 법 제정을 주도한 EU 인사를 비자 제한 대상에 올린 전례가 있다. 미국 재계가 한국의 정통망법을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인식하고 미국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할 경우 한국의 대외 리스크 관리는 한층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개정 정통망법은 발의 단계부터 여론의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보완 없이 입법이 강행됐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통상 문제까지 불거졌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미 공포된 법을 되돌릴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경고음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자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정치권의 무리수 때문에 통상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불통의 행태가 이어진다면 그다음 변수는 정부와 여당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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