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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생산거점 확보… 안보 등 국가간 불필요한 충돌 경계" [2026 신년기획, 신냉전시대 석학의 제언]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4 18:58

수정 2026.01.04 21:54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명예교수
美·中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수출구조 구축이 최우선
정치·역사 문제 등 민감 이슈 지양 공급망 리스크 최소화해야
차세대 제조허브로 떠오른 베트남·말레이·인니 등 투자 확대
유럽 등과 경제협력 늘리고 국내공급 역량 키워 자립성 강화
日인구감소·고령화 문제, 의료 등 헬스케어 산업 성장 기회로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일본이 선택해야 할 전략적 방향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와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동시에 현실화되면서 일본은 어느 한 나라에 과도하게 기댄 기존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본 도쿄 지요다구 오테마치에 위치한 경제산업성 산하 경제산업연구소(RIETI) 연구실에서 4일 만난 우라타 슈지로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사진)는 일본이 직면한 최대 과제인 '대미·대중 의존 축소'를 위해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추진해야 할 과제로 공급망 다변화, 기술 자립성 강화, 국제협력 네트워크 재편을 꼽았다. 특히 국내 생산역량 강화, 한국 및 유럽연합(EU) 등과의 협력 확대, 기술 경쟁력 제고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부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일본 와세다대 사회학부 교수(국제경제학 전공)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대학원 교수(현) △일본 경제산업연구소(RIETI) 명예 이사장(현) △일본경제연구센터(JCER) 특별임명연구원(현) △개발도상국연구소(IDE-JETRO) 특별선임연구원(현) △동아시아경제학회(EAEA) 회장(현)
■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부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일본 와세다대 사회학부 교수(국제경제학 전공)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대학원 교수(현) △일본 경제산업연구소(RIETI) 명예 이사장(현) △일본경제연구센터(JCER) 특별임명연구원(현) △개발도상국연구소(IDE-JETRO) 특별선임연구원(현) △동아시아경제학회(EAEA) 회장(현)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중국이 경제보복 카드로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최선의 전략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 조용히 공급망 리스크를 줄여 나가는 것이라고 우라타 교수는 제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의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미중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일본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도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수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일본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과 각종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동맹국 간에는 드문 조치이지만, 미국이 언제 어떤 이유로 시장을 닫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미 의존도를 줄이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역시 정치·안보·역사 문제 등 복잡한 요인이 얽혀 있어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큰 리스크가 된다. 따라서 대중 의존도를 낮추는 것 또한 자명한 과제다. 미중 의존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 국내 공급 역량 확대와 경제 경쟁력 강화를 통한 자립성 확보가 있다. 동시에 한국, EU 등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무역을 다변화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둘째로 일본이 타국에 '매우 중요한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자체가 일본의 자립성을 높이는 동시에 일본에 대해 무리하거나 과도하게 까다로운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을 낮춘다.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곧 안전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정책이 중요하다.

―2023년 기준 미국과 중국은 각각 일본 수출의 20.2%, 17.6%를 차지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공급망 의존도가 높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단기·중기·장기 전략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단기·중기 전략은 기업과 정부의 역할로 나눌 수 있다. 기업은 먼저 자사 공급망을 면밀히 점검해 취약지점을 파악하고, 특정 부품이 특정 기업·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취약부분이 드러나면 대체조달처 발굴이나 재고 확충을 통해 단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으며 공급차질이 발생해도 일정 기간은 안전재고로 대응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다. 장기적으로는 공급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는 핵심 부품에 대해 자체 생산을 추진하거나 대체 기술·소재 개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연구개발, 설비투자, 인력 확보 등 장기간의 준비가 요구되는 과제다. 정부는 기업의 공급망 전환 과정에서 정보 제공·재정 인센티브·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코트라(KOTRA)나 일본의 제트로(JETRO) 같은 기관이 해외 정보·시장 조사·투자 관련 지원을 제공하며, 조달처 전환에 따른 비용을 보조금이나 저금리 융자로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연구개발 보조금 확대와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중장기적 공급망 구조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10월 28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미군기지에 정박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서 연설하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소개하자 다카이치 총리가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10월 28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미군기지에 정박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서 연설하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소개하자 다카이치 총리가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AP뉴시스


―향후 글로벌 밸류체인(GVC), 특히 동아시아 GVC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일본이 '재편의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동아시아, 특히 아세안(ASEAN) 국가들은 중국과 가까운 국가와 미국과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로 나뉜다. 안보·경제안보 측면에서 민감한 기술·부품은 글로벌 가치사슬이 미중 두 축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다. 반면 비민감 품목은 아시아 차원의 분업구조를 활용해 효율성을 추구할 여지가 크다. 반도체의 경우 한국과 일본은 미국 주도의 체제에 속해 중국과의 기술·부품 거래에 제약을 받는다. 중국 관련 반도체는 중국 내부에서만 유통·생산되는 독자 체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국·일본을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또 다른 반도체 공급망과 가치사슬을 구축할 수 있다. 그 결과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미중으로 양분된 가치사슬이 형성될 수 있다. 일본이 자립성과 공급망 다변화를 강화한다면 역내에서의 역할과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 일본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 심화도 중요하다. 이는 자립성과 분산이라는 목표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기술·경제 협력은 일본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이다.

―중국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생산거점으로서 가장 유망한 아세안 국가는.

▲가장 주목받는 국가는 베트남이다. 전자제품·의류 등은 이미 상당 부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됐고, 이 흐름은 앞으로도 강화될 전망이다. 고부가 전자제품·반도체 분야에서는 말레이시아가 두드러진다. 정부가 전략적으로 기업을 유치하며 관련 공정과 엔지니어가 집중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중요한 후보로 전기차(EV) 생산에 적합하고 풍부한 니켈 자원을 바탕으로 배터리 산업 투자가 활발하다. 인구 규모도 커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 매력적이다. 태국은 오랜 자동차 생산허브로서 최근 EV 전환이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는 이들 국가의 사업을 총괄하는 동남아 지역본부·허브 역할을 하며 공급망 관리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한다.
지난해 10월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악수했다(하단 사진). 일본은 지난해 7월 미국과 관세협상을 신속하게 타결한 반면 중국과는 최근 대만 문제를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해 10월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악수했다(하단 사진). 일본은 지난해 7월 미국과 관세협상을 신속하게 타결한 반면 중국과는 최근 대만 문제를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주도국인 동시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참여하고 있다. 향후 10년 내 이 세 가지 경제 틀이 어떤 방향으로 간다고 보나. 일본이 지향하는 전략은.

▲CPTPP와 RCEP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공식 자유무역협정(FTA)인 반면, IPEF는 미국이 주도한 경제협력 틀로 전통적 FTA는 아니다. CPTPP는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 국가에 개방된 글로벌 FTA 체제로 진화하고 있다. RCEP보다 규범과 자유화 수준이 훨씬 높아 RCEP 회원국 상당수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지만 향후 10년 내 조건을 충족할 경우 한국과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가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CPTPP와 RCEP 두 체제 간 일정한 수렴·통합이 진행될 수 있다. IPEF는 관세 인하보다는 공급망·탈탄소·디지털·공정경제 등 경제안보 중심의 협력체에 가깝다. 14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나 협상 진전이 더디고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평가가 있다. 자칫 공중분해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미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경제안보·대중 견제 측면에서 향후 전개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CPTPP 등 FTA를 통해 높은 규범을 확산하는 동시에 전자상거래 등 복수국간협정 논의에서도 공동의장국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WTO의 전원합의 구조가 어렵다는 현실에서 일본은 다자·복수국간·FTA를 병행하며 규범 형성 전략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계기로 일중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금지 등 경제제재 카드까지 위협하고 있는데 일본의 대응전략은.

▲최근 일중 갈등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맞대응은 피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나 일본관광 제한 등 경제를 무기화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국제사회에 '정상적이지 않고 비열한 방식'이라고 알리는 한편 2010년 희토류 수출제한 당시와 같은 충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급망 분산과 대체조달처 확보를 계속 모색하고 있다. 다만 중국 경제가 둔화되고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국내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일본을 '악당'으로 삼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 점이 일본 입장에서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희토류 등 중요 광물·부품 수출이 한 번 중단되면 일본은 큰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용히 상황을 관리하며 지켜보는' 전략이 바람직할 것이다.

―향후 5년간 일본 경제가 직면할 가장 큰 위험 3가지와 가장 큰 기회 3가지는.

▲가장 큰 리스크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다. 인구와 노동력 감소는 경제성장 잠재력을 직접적으로 낮추며 이를 상쇄해 줄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경제 규모 축소와 생활 수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리스크는 미중 갈등을 비롯한 국제 정치·경제 환경의 불안정성이다. 국제 경제질서가 흔들리면서 일본을 포함한 각국의 무역·투자 환경에 큰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일본 산업의 정체, 혁신 지연, 경쟁력 상실이라는 세 번째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 다만 같은 요소들이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고령화는 의료·요양·헬스케어·실버산업 측면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고 기후변화 대응과 탈탄소 전환은 그린 기술과 에너지 전환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인공지능(AI)·데이터 기술 혁신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고부가가치 산업과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또 동아시아 공급망 재편 속에서 일본이 기술력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핵심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면 자립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