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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형님은 잊어라"... 3년 차 이범호 감독이 '독한 조련사'를 자처한 이유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7 08:00

수정 2026.01.07 18:32

"실수 후 자책은 사치다"... 이범호가 젊은 피에게 '망각'을 주문한 까닭
"착한 형님은 오키나와에 묻었다"... 3년 차 사령탑의 달라진 '눈빛'
"약해지는 건 용납 못 해"... 주전 이탈 핑계 지워버린 '독한 선전포고'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를 마친 이범호 기아 타이거즈 감독이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뉴시스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를 마친 이범호 기아 타이거즈 감독이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뉴시스

[파이낸셜뉴스]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스토브리그의 칼바람 속에서 KIA 타이거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주전 유격수 박찬호, 거포 최형우의 이탈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지나간 자리, 팬들은 불안해한다.

하지만 시계를 딱 한 달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12월,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를 마치고 귀국하던 날 이범호 감독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귀국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3년 차를 맞이하는 사령탑의 처절한 '생존 선언'이자, '형님 리더십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난 2년, 선수들을 다독이며 이끌어왔던 '형님' 이범호는 지난 오키나와 캠프에서 만큼은 없었다.

그는 유독 젊은 선수들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였고, 훈련 강도를 높였다.그가 회초리를 든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멘탈의 회복 탄력성' 때문이었다.

'2025 신한 SOL뱅크 KBO 리그'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KIA 이범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2025 신한 SOL뱅크 KBO 리그'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KIA 이범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이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고참 선수들은 실수가 나오면 '아,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바로바로 리셋이 된다"고 운을 떼며 "하지만 젊은 선수들은 다르다. 실수 하나에 심경의 변화가 생기고, 그 감정을 경기 내내 끌고 간다"고 뼈 있는 진단을 내렸다.

야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수비 실책 하나에 얽매여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젊은 선수들이 범하는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오류다. 이 감독은 이 지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실수 후 툭 털어버리는 베테랑의 노련함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만 여린 채로는 프로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그는 "강한 훈련이 장점으로 비쳤을지 단점으로 비쳤을지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집중력을 가져야만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그래서 더 강하게 만들고 싶은 의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포수 한준수(왼쪽)과 한재승.연합뉴스
포수 한준수(왼쪽)과 한재승.연합뉴스

KIA 타이거즈 마무리 투수 정해영이 지난 2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2025 신한 쏠뱅크 KBO리그 LG와의 경기에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KIA 타이거즈 제공
KIA 타이거즈 마무리 투수 정해영이 지난 2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2025 신한 쏠뱅크 KBO리그 LG와의 경기에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KIA 타이거즈 제공

오키나와의 지옥 훈련은 실수를 범했을 때 찾아오는 패배감과 당혹감을 강제로라도 이겨내게 만드는 '심리적 담금질'이었던 셈이다.

이 감독은 전력 약화 우려에 대해서도 "올해보다 더 약해지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박찬호, 최형우 등 주력들이 빠져나간 상황을 탓하며 '리빌딩'이라는 방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는 오히려 "갑자기 김태형 같은 젊은 투수가 알을 깨고 나올지 누가 알겠느냐"고 반문하며, 특정 스타 플레이어에게 의존하기보다 오선우, 박민, 정현창 등 준비된 젊은 자원들이 '독기'를 품고 튀어나오는 야구를 구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뉴스1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뉴스1

단, 전제 조건은 하나다. 실수를 마음에 담아두는 '여린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 감독은 "여러 변수에 대처하지 못했던 작년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부터 처절하게 반성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바꿔 말하면 멘탈이 준비되지 않은 선수는 기용하지 않겠다는 경고일 수도 있다.

착한 형님은 오키나와에 묻어두고 왔다. 이제는 실수 후에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독한 호랑이'들만이 이범호 호(號)에 승선할 수 있다.

1월 아마미오시마 스프링캠프 출발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6년 KIA를 5강 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없다.
하지만 진짜 이범호의 야구는, 바로 지금부터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