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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잡았지만 유가는 잠잠…'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 석유의 경제학 [김경민의 적시타]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5 11:20

수정 2026.01.05 11:20

세계 최대 매장량에도 생산 회복엔 시간…"단기 영향 제한적"
노후 인프라·정치 불확실성에 투자 지연, 장기 변수만 남아
중질유 변수와 러시아 압박…장기 판은 달라질 수도
베네수엘라의 석유시설.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석유시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뒤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사실상 장악하겠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국제 유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지정학적 충격에도 시장은 이번 사태가 단기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석유는 있어도 당장은 못 캔다"…유가가 버틴 이유

4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은 수년간의 방치와 국제 제재로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생산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에는 인프라 복구와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110만 배럴 수준으로 과거 300만 배럴을 웃돌던 시기와는 큰 격차가 있다.



가솔린 가격 추적업체 가스버디의 수석 석유 분석가 패트릭 드 한은 "미국의 군사 작전으로 석유 인프라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오지만 실제 문제는 수년간 누적된 노후화"라며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의 복권을 주장하는 등 권력 구도가 혼재돼 있다. 미국 석유 기업들로서는 안정적인 정권과 계약 질서가 확립되기 전까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판단 속에 국제 유가는 비교적 차분한 흐름을 유지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이날 오후 7시45분(미 동부시간) 기준 배럴당 57.39달러로 상승 폭은 1%에도 못 미쳤다. 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으로 이미 공급량이 시장에 반영돼 있고, 글로벌 원유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라는 점도 유가 급등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픽]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 추이 (AFP=연합뉴스)
[그래픽]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 추이 (AFP=연합뉴스)
매장량은 세계 최대 "장기 판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단기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약 3030억 배럴의 확인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약 17%에 해당한다.

프라이스 퓨처스 그룹의 수석 시장 분석가 필 플린은 "만약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성공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다면,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비교적 빠르게 석유 산업 재건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네수엘라가 다시 석유 생산 강국으로 부상할 경우 "장기적으로 유가를 낮은 수준에 고착시키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중질유는 디젤 연료와 아스팔트, 중장비 연료 생산에 필수적이다. 베네수엘라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로 전 세계적으로 디젤 공급이 빠듯해진 상황에서 미국의 경질유는 이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베네수엘라산 중질유에 맞춰 설계된 미국 멕시코만 연안 정유시설들로서는 베네수엘라 원유 접근성이 회복될 경우 효율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라이스대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프로그램 책임자인 프란시스코 모날디는 "베네수엘라의 생산량을 하루 100만 배럴 수준에서 400만 배럴로 끌어올리려면 약 10년과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정치적 안정성과 계약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 한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자원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논란도 변수다.
컬럼비아대 법학 교수 매슈 왁스먼은 "군사 점령 국가는 다른 국가의 자원을 취해 자국을 부유하게 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이 있다"며 "베네수엘라 석유의 정당한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