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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자에 흔들리는 연준 독립성… 옐런 “초당적 합의·재정개혁 필요”[전미경제학회]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5 12:15

수정 2026.01.05 12:24

4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26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카샤프 시카고 교수, 타나시오스 오르파니데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 로레타 메스터 전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 데이비드 로머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왼쪽부터)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이병철기
4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26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카샤프 시카고 교수, 타나시오스 오르파니데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 로레타 메스터 전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 데이비드 로머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왼쪽부터)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이병철기





【파이낸셜뉴스 필라델피아=이병철 특파원】 "연준은 재정당국의 자금조달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은 4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26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미국이 아직 '재정우위(fiscal dominance)'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 방향으로 밀려갈 수 있는 위험한 전제조건들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우위란 정부의 과도한 재정 적자와 부채 부담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물가 안정이 아니라 국채 이자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종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금리를 인상해야 할 상황에서도 재정 악화를 우려해 금리 인상을 주저하거나, 사실상 국채를 떠받치기 위해 통화 발행에 나서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옐런 전 의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출 개혁과 증세를 포함한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정적자가 연준 독립성 저해


옐런 전 의장은 "재정우위 체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더 높고 더 불안정해진다"며 "물가 기대가 한 번 흔들리면 이를 다시 붙잡는 비용은 훨씬 커진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이미 재정우위 상태에 들어섰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급등했을 당시 연준은 정부의 이자 부담이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다. 이는 통화정책이 재정 필요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미래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수준에서 향후 수십 년 동안 150%를 넘어설 전망이다. 순이자 비용 역시 GDP 대비 5% 안팎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연방 재정적자도 이미 GDP 대비 약 6% 수준에 이르렀다.

옐런 전 의장은 "전쟁이나 경기침체가 아닌 평시에도 이 같은 적자와 이자 부담이 지속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적인 적자와 증가하는 이자 부담, 정치적 교착 상태를 이유로 이미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미국 국채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며 "시장이 향후 재정 조정에 대한 신뢰를 잃는 순간, 위험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전환점'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우위 위험을 키우는 또 다른 축은 정치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연준 이사의 해임 가능성을 거론하며, 의회가 통화정책 심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려는 움직임은 모두 중앙은행 독립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초당적 합의로 중기 재정조정"


옐런 전 의장이 제시한 해법은 명확하다. 급격한 긴축이 아니라, 부채 대비 GDP 비율을 안정시키는 신뢰 가능한 중기 재정조정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행 가능성이다. 감세와 지출 확대를 동시에 약속하는 정치 환경에서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세입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정치권에서는 누구도 먼저 이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비드 로머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초당적 합의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다가오는 재정 재앙에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재정 문제는 국방·비국방을 포함한 재량지출 삭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등 의무지출 개혁과 세입 확대가 논의돼야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로머 교수는 "재정 적자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초당적 합의 "불가능은 아니다"


다만 옐런 전 의장은 과거에도 치열한 당파 갈등 속에서 재정 합의가 가능했던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균형재정에 합의했던 사례와, 2023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초당적으로 부채한도 협상을 타결해 향후 10년간 약 1조5000억 달러의 적자를 줄이기로 한 결정을 언급했다.

옐런 전 의장은 "미국이 결국 재정우위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로레타 메스터 전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재정우위 국면에 진입할 경우 연준은 본연의 목표인 물가 안정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도 내놓았다.
메스터 전 총재는 "과거 정부는 재정 '절벽'에 서 있다는 점과 그 함의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현 정부는 자신들이 하는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