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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추모 물결 “매일 불안해 토로했더니, 숙명” 자녀 출산 병원에 차려진 빈소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5 16:33

수정 2026.01.05 16:35

동문부터 영화계 후배, 종교계까지 추모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안성기 빈소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의 빈소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2026.1.5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끝)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안성기 빈소 (서울=연합뉴스) 배우 안성기의 빈소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2026.1.5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끝)

배우 안성기의 빈소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배우 안성기의 빈소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중학교 시절 소풍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안성기와 조용필. 연합뉴스
중학교 시절 소풍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안성기와 조용필. 연합뉴스

1997년 KBS '빅쇼'에서 노래하는 안성기(좌)와 조용필(우)
1997년 KBS '빅쇼'에서 노래하는 안성기(좌)와 조용필(우)

[파이낸셜뉴스] 1957년에 데뷔해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과 같았던 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숨을 거두자 영화팬부터 동문, 업계 후배, 종교계와 정치권까지 고인을 추모했다.

특히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서울성모병원은 고인이 생전 혈액암을 투병하며 치료를 받았던 곳이자, 항암 치료로 병세가 다소 호전됐던 2021년 10월 말 1억원을 기부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두 자녀 모두 서울성모병원의 전신인 강남성모병원에서 출산하는 등 병원과 인연이 깊다.

조용필 "아버지가 안성기와는 놀아도 돼" 팬부터 동문, 이웃도 추모

자신을 안성기 팬이라고 밝힌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안성기 배우의 영화 스틸 사진을 올리며 “멋지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안성기 씨를 보내드리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사람은 마지막 모습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안성기 배우님을 너무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출연했던 거의 모든 영화들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부디 평온의 세상에서 잠드소서”라고 추모했다.

또 다른 팬은 안성기의 출연작 ‘아름다운 시절’(1988)을 떠올리며 “영화에서 비겁하고 위선적인 아버지로 나왔던 그분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자체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 아버지 역할만은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동네 이웃이라고 밝힌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어린 시절 ‘고래사냥’부터 많은 멋진 작품으로 기억되는 안성기 배우님을 말년에 같은 동네에서 몇 번 지나치다 뵌 적이 있습니다. 항상 먼저 인사해 주시고 밝게 웃어 주시던 모습, 군대 가던 아들을 아끼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소탈하시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신다는 느낌이었는데 떠나셨네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에 항상 계셨던 분입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자신을 동성고 후배라고 밝힌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동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좀 얹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배우 안성기님이 고등학교 선배님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저는 혜화동에 있는 동성고등학교 62회 졸업생입니다. 제 기준에서 동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은 김수환 추기경, 만화가 고우영 화백, 그리고 배우 안성기님인데 찾아보니 43회 졸업생이시더군요. 74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나셨습니다”라며 선배의 명복을 빌었다.

안성기의 중학교 시절 흑백사진을 올린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조용필과 중학교 같은 반 29번, 30번이었던 안성기였습니다. 강화로 소풍 가서 찍었다고 합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 마지막 빗속 장면처럼 속 깊고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나간 배우의 평안을 빌어봅니다”라고 적었다.

한편 조용필은 1997년 KBS ‘빅쇼’ 출연 당시를 떠올리며 “제가 29번이었는데, 안성기 씨는 바로 제 짝인 30번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인가 집에서 저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는데, 성기가 밖에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습니다. 아버님이 ‘안성기는 괜찮다, 안성기하고는 얼마든지 놀아도 괜찮은데 다른 아이들과는 안 된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보석 "매일매일 불안한데.." 토로했더니.."늘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받아줘"

고인이 된 안성기를 추모하는 올린 페이스북 이용자의 사진들.
고인이 된 안성기를 추모하는 올린 페이스북 이용자의 사진들.

고인이 된 안성기를 추모하는 올린 페이스북 이용자의 사진들. 영화 스틸 속 안성기.
고인이 된 안성기를 추모하는 올린 페이스북 이용자의 사진들. 영화 스틸 속 안성기.

고인이 된 안성기를 추모하며 올린 페이스북 이용자의 사진들.
고인이 된 안성기를 추모하며 올린 페이스북 이용자의 사진들.
배우 정보석은 안성기와의 일화를 떠올렸다. 그는 “제가 배우 초창기에 ‘형님, 저는 매일매일이 불확실하고 불안한데, 언제쯤 이 불안이 없어질까요?’라고 여쭸더니 ‘나도 아직 불안해. 그런데 그 불안은 배우라면 누구나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숙명 아닐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떠나시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만, 가시는 길 편히 가십시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그저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추모했다.

영화배우 한지일은 “2024년 12월 송년 영화인 모임에 참석해 불편한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영화배우 이전에 평범한 국민 한 사람으로서 품격과 책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 진정한 국민배우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영화감독 정초신은 “전화를 걸면 다정한 목소리로 받아 주셨습니다. 1998년에 맺은 인연이었는데 늘 기억해 주셨습니다. 단 한 편의 인연뿐이었으나 한 번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30년 영화 인생에서 만났던 모든 배우 가운데 가장 성실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대사를 외우지 않은 채 현장에 오신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배님, 외롭고 고단한 길 조심해서 가십시오. 한국 영화와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과 ‘퇴마록’으로 만났던 한 편의 인연, 영광이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고인을 추모하며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며 영화제의 일원으로서 든든한 조력자이자 파수꾼으로 성장에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 "한국문화 역사 홍보에도 많은 기여"

한 신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성기를 떠올리며 “국민배우이자 신앙인이었던 안성기 요한 사도 형제님께서 오늘 선종하셨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사셨던 형제님의 연기와 나눔을 사람들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천상 영복을 기도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고인과의 추억을 전하며 “경제부총리를 마치고 야인으로 지낼 때 제가 존경하는 영화계 원로 신영균 선생님께서 두 차례나 저녁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영화광인 저를 위해 만들어 주신 자리였고, 안성기 선생님, 이병헌 배우, 대스타셨던 문희 선생님과 손숙 선생님 등이 함께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름다운 예술인’ 그 자체였던 안성기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많이 그리울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추모했다.

서경덕 교수는 고인의 공로를 언급하며 “안성기 선생님은 한국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 홍보에도 많은 기여를 하셨습니다. 3·1운동 100주년 독립운동 역사 알림 영상, 6·25전쟁 70주년 대국민 캠페인, 유해 발굴 홍보 영상 등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을 알리는 영상에도 동참해 주셨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김장문화와 농악을 알리는 전 세계 홍보 캠페인에도 참여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저녁 늦게까지 녹음실에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늘 격려해 주신 안성기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선배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