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매운맛' 장착한 비틀쥬스… 압도적 스펙터클 무대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05 19:04

수정 2026.01.05 21:50

팀 버튼 감독 동명 영화가 원작
가족 이야기로 풀어낸 뮤지컬
코미디언 이창호 대본 각색 참여
국내 정서 맞춘 로컬라이징 눈길
2025 뮤지컬 '비틀쥬스' 정성화 공연. CJ ENM 제공
2025 뮤지컬 '비틀쥬스' 정성화 공연. CJ ENM 제공
산발한 머리와 창백한 얼굴, 엉뚱한 광기를 장착한 유령 '비틀쥬스'가 다시 돌아왔다.

5일 CJ ENM에 따르면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4년 만의 재연을 통해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지난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토니상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화제작이자 2019년 드라마데스크어워즈 무대 디자인상 수상작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1년 초연에 이은 재연으로 브로드웨이 스케일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관객 정서에 맞춘 로컬라이징 작업이 눈에 띈다. 대본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코미디언 이창호가 각색에 참여, 상황에 밀착된 재치있는 유머를 더했다.

14세 이상으로 조정된 관람등급에 맞게 수위 높은 농담도 강화됐다.

특히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을 좋아한다면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의 뮤지컬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저승과 이승 사이에 홀로 남겨져 뼛속까지 외로운 비틀쥬스 역에는 정성화, 정원영, 김준수가 캐스팅돼 각자의 색깔로 이 작품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김준수는 괴기한 유령을 귀엽고 장난스러운 악동으로 재탄생시켰다는 평을 얻고 있다. 정원영은 애드리브와 무대 장악력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정성화는 초연 당시의 노련함을 바탕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한 관객은 "분노조절장애 캐릭터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줄 몰랐다"며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는 재치 있는 소감을 남겼다.

'비틀쥬스'만의 색다른 분위기가 취향에 맞는다면 낄낄 웃으면서도 뭉클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냉소로 감춘 소녀 리디아는 죽음도 두렵지 않은 인물로 이 작품의 감정적 축을 담당한다. 홍나현과 장민제가 더블 캐스팅돼 엄마의 부재와 가족 간 단절에서 비롯된 외로움을 섬세하게 그린다.

특히 넘버 '홈(Home)', '죽은 엄마(Dead Mom)' 등을 통해 상실과 그리움의 감정을 절절히 전하며 웃음 속에서 갑자기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을 만든다.

알렉스 팀버스 연출은 공연 도록에서 "이 작품의 핵심은 코미디만이 아니다"며 "슬픔과 치유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의 기묘한 기쁨에 관한 이야기다. 리디아의 감정적 여정에 깊이 주목했다"고 말했다.

마치 테마파크에 온 듯한 무대의 스펙터클 역시 이 작품의 강점이다. 거대한 세트가 여러 차례 완전히 다른 콘셉트로 변주되고, 모래벌레 퍼펫 등 아날로그 상상력과 최신 기술이 결합된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특히 2막에서 저승 세계의 각양각색 캐릭터들이 펼치는 쇼와 미로 장면 연출은 감탄을 자아낸다.


작품은 기괴함 속 따뜻함이라는 팀 버튼 특유의 미학을 충실히 계승한다. 죽음과 유머, 괴짜와 외로움이 공존하는 세계관 속에서 비틀쥬스와 리디아가 이끄는 중심 서사는 삶의 아름다움과 가족애의 의미를 환기한다.
세상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성장 서사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