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향년 74세로 별세
6세 데뷔… 영화 200여편 출연
장르불문 열연하며 흥행몰이
韓 3대 영화제 주연상 모두 수상
李 대통령 "영화계에 큰 발자취"
6세 데뷔… 영화 200여편 출연
장르불문 열연하며 흥행몰이
韓 3대 영화제 주연상 모두 수상
李 대통령 "영화계에 큰 발자취"
5일 한국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안성기는 오전 9시께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으나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증상이 악화되며 재치료를 받는 등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1951년생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6세의 나이로 출연하며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69년간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안성기는 1950년대 후반 아역 스타로 주목받으며 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의 얼굴 중 하나였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약 7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고교 진학 후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연기를 잠시 중단했다. 군 복무를 포함해 약 10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안성기는 20대 후반 베트남어를 전공하며 일반 직장인의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베트남 공산화로 진로가 막히면서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복귀 초기에는 '제3공작'(1978) 등 반공·계몽 영화의 조연을 맡았으나,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로 전환점을 맞았다. 이 작품으로 제19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성인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등을 통해 198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안성기의 가장 큰 강점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 스펙트럼이었다. 1984년 작품 '고래사냥'에서는 왕초 민우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1993년 '투캅스'에서는 코믹한 비위 경찰 조형사로 변신해 한국 코미디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1995년 '영원한 제국'에서는 역대급 정조 연기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며,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냉혹한 악역 장성민으로 180도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2000년대 들어서도 '실미도'(2003)의 최재헌 준위, '라디오 스타'(2006)의 박민수 등으로 중년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안성기는 한국 3대 영화상인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트리플 크라운' 배우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 날'로 대종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1983년 '안개마을'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동시 수상했다. 1990년 '남부군'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3대 영화상 석권을 완성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SNS에 "대한민국 영화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안성기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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