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숫자가 많은 만큼 다양하다. 업종도, 규모도, 거래도, 생애주기도 다르다. 성장의 모습이 같을 리 없다. 어떤 기업은 매출이 늘어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 이익이 늘어도 고용은 그대로다. 매출은 제자리라도 기술과 시장을 바꾸며 내일을 준비한다. 성장에 이런 다양함을 다 담기 어렵다. 그럼에도 하나의 기준으로 성장을 정의한다면, 현장과 괴리가 커진다.
더 위험한 것은 정교함의 유혹이다. 정책과 기준은 공정해야 한다. 셈식, 가중치, 컷오프를 촘촘히 세우면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착시다. 기준이 복잡하면, 기업은 혁신보다 평가 대응에 바쁘다. 생산성보다 서류가 앞서고, 기술보다 지표가 먼저다. 정책이 기업을 따르는 게 아니라 기업이 정책을 좇게 된다. 그러면, 정책은 본질을 잃는다.
기준을 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기준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선택과 집중이 따른다. 그럼 성장은 줄 세우기가 된다. 정책 공급자에게 줄 세우기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형적인 산업정책의 문법이다. 한국의 산업정책은 대기업에 집중했다. 성과는 분명하고 빨랐다. 그러나 산업정책이 낳은 양극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중소기업 정책과 산업정책은 분명 다르다. 산업정책은 세 단계를 거친다. 먼저 목표 성장률을 설정하고, 핵심 산업을 고른 뒤, 자원을 집중한다. 산업정책의 결과는 성장률로 확인한다. 반면 중소기업 정책은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삼기도, 특정 산업을 고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성장' 정책은 목표와 산업 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꼴이다. 지원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 다만 자원의 집중으로 정책의 효율은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형평성과 보편성에 익숙하다. 효율성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그렇다면 '성장' 정책의 관점을 뒤집어 보자. 성장은 정책의 공급자가 제시하는 결과가 아니다. 정책은 기업의 성장을 가늠하는 심판이 아니다. 성장은 수요자인 기업이 선택하며 만들어가는 목표이자 과정이다. '성장' 정책은 플랫폼 방식으로 접근해 기업이 적합한 정책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인력(채용·훈련), 기술(연구개발·공정개선), 자금(운전자금·투자·보증), 판로(민간·온라인), 수출(인증·물류·마케팅), 전환(업종·디지털·AI), 지역(입지·인프라) 같은 모듈을 갖추고, 기업이 선택하고, 조합해야 한다. 정부의 질문은 '누가 성장기업인가'가 아니라 '성장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여야 한다. 자칫 성장에 집착하면, 성장기업이 정책을 독점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현재 경기를 V자의 최저점인 일시적 침체로 인식한다. 침체는 돈을 풀면 반등한다. 경기는 확장과 수축이 반복하는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한 L자형 저성장 국면이다. 당장의 성장보다 긴 호흡으로 미래의 시장을 읽고,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전략과 정책이 필요하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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