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이 일인 언론들은 지난해 12월 주요 먹거리 물가가 전년 대비 10% 이상 오르자 '금사과' 소리가 다시 나올 판이라며 또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선정한 착한가격 업소들까지 줄줄이 음식값을 올리고 있다.
전 국민의 생계가 걸린 물가가 뛴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 행보는 물가안정에 상당 부분 할애됐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청와대에서 직원들과 떡국을 먹었을 뿐이다. 신년사는 '민생 소비쿠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자화자찬과 'K-민주주의의 찬란한 빛이 일상에 스며들게 하겠다'는 이상주의로 메워졌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부처 업무보고 때 깨알 지시를 하지만 유독 물가에만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나마 작년 9월 국무회의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사과값이 오르면 왜 바나나값도 오르느냐"고 물은 게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송 장관이 파나마병과 환율을 이유로 들었지만 대통령은 매점매석과 정부 통제역량이 문제라고 했다.
농산물 가격은 당해 연도 작황, 재배면적, 유통·물류비, 인건비, 비료 가격, 환율, 수요 변화 등 수많은 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은 이 모든 걸 불공정행위와 공무원의 능력 문제로 단순화했다.
왜 그랬을까. 인플레이션은 성장률이나 실업률과 달리 일상과 맞닿아 있다. 사람들은 장을 보고, 기름을 넣고, 전기요금을 낼 때 삶이 얼마나 팍팍해졌는지 느낀다. 특히 '얼마나 올랐는지'보다 '왜 올랐는지' 설명을 요구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통령이 금사과 가격을 평가하고 구조적인 이유를 설명하면 할수록 후폭풍이 불게 된다. 고물가는 고소득층에게는 불편이지만 서민층에게는 삶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물가가 가진 정치적 속성이고 이 속성을 정치적으로 꿰맞춘 것이 '물가 프레임'이다. 정치인들은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나간다'는 조지 레이코프('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저술)의 말을 신봉한다. 레이코프는 항상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사실을 나의 프레임에 맞춰라, 상대편의 프레임으로 구성된 질문에는 절대 답하지 말라, 언제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진보 정치인들에게 조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면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송 장관은 필자와의 통화에서 "지금의 물가가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사과는 저장물량이 꽤 있어서 안정화될 거고 쌀값은 작년 10월 피크에 비해 떨어졌다는 것이다.
체감물가를 두고 그와 논쟁할 생각은 없다. 언론이 과민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채소류처럼 매일 수확이 가능한 품목과 사과처럼 한 해 농사를 망치면 그걸로 끝인 품목 간 대응이 달라야 한다거나, 유통구조 개혁만큼 중요한 것이 생산의 안정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무엇보다 "장바구니물가가 오를 때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며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한 그의 고백에 머리를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1년10개월 전 '대파 875원' 논란 당시 "다른 데서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것 같다"던 윤 전 대통령의 말에 송 장관은 "5대 대형마트는 다 한다"고 답했다. 당시 대통령의 실언이 문제의 뿌리였지만 장관의 변명 이후 모든 사실은 프레임에 튕겨 나갔다. 국민은 인플레에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공감을 원한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변명이 아니라 솔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을 것이다. 지금의 물가 경고음에 대통령과 정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syhong@fnnews.com 홍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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