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연관된 유조선 2척을 잇따라 나포하며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통제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나포된 선박 가운데 한 척은 러시아 국적이어서 러시아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은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 원유 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대신,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대규모 원유 물량을 넘겨받아 국제 시장에 판매하고 그 수익금의 사용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기존 비축 원유뿐 아니라 앞으로 생산되는 원유까지 미국이 '무기한' 관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러시아 국적 유조선까지 나포
미군 유럽사령부는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과거 '벨라 1(Bella 1)'로 불렸던 유조선 '마리네라(Marinera)'를 제재 위반 혐의로 나포했다고 밝혔다.
석유를 싣고 있지 않았던 이 선박은 앞서 원유를 적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로 향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2주 넘게 미군의 추적을 피해 도주 중이었다. 마리네라는 당시 가이아나 국기를 허위로 달고 운항했으며, 이후 러시아 기업에 매각돼 러시아 국적으로 재등록됐다.
러시아는 지난달 미국 측에 해당 선박에 대한 추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공식 외교적 요청을 제출했지만, 미국은 마리네라를 무국적 선박으로 간주했다. CNN은 미국 당국이 선박의 국적 변경 과정과 실제 소유 구조를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 교통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 법과 국제법 규범에 따라 지난달 말 해당 선박의 러시아 국기 운항을 허가했다"며 "미군이 선박에 승선한 이후 선박과의 연락이 끊겼고, 나포는 국제수역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느 국가도 공해상에서 타국 관할 선박에 무력을 사용할 권리는 없다"며 미국의 조치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같은 날 카리브해에서도 파나마 국적의 유조선 'M 소피아(M Sophia)'를 나포했다. 해운 데이터업체 클플러(Kpler)에 따르면 이 선박은 2025년 한 해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베네수엘라를 오가며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운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제재 대상이자 불법적인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봉쇄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전면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특정 해역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차원에서 베네수엘라 원유 유통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美, 베네수엘라 원유 '무기한 관리' 선언
미국은 유조선 나포와 병행해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직접 통제 계획도 공개했다. 우선 제재와 수출 봉쇄로 저장고와 유조선에 쌓여 있던 3000만~50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넘겨받아 국제 시장에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베네수엘라의 임시 정부 당국이 해당 원유를 미국에 넘기기로 합의했으며, 매우 조만간 미국에 도착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는 이미 이 원유를 국제 시장에 판매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원유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금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 레빗 대변인은 "판매 수익은 미국 정부의 재량에 따라 미국인과 베네수엘라인의 이익을 위해 분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생산되는 원유에 대해서도 통제를 무기한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 장관은 이날 마이애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우선 비축된 원유를 판매하고, 이후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원유를 무기한으로 시장에 판매할 것"이라며 "매각 대금은 미국 정부가 관리하는 계좌에 예치되며, 궁극적으로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다시 베네수엘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통제권을 대폭 강화하자 베네수엘라 원유의 최대 구매국인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대변인 마오닝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력을 사용하고, 베네수엘라가 자국의 석유 자원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괴롭힘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이란이나 러시아로부터 대체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미국에 대해 베네수엘라 원유 봉쇄 완화를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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