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 번역가가 전하는 이주사란 무엇인가
이주민들에게는 오래전부터 당연시되었던 이주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들을 이제야 비로소 학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성과물이 새로운 이주 연구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도서 '이주사란 무엇인가'는 이주를 근대 이후의 현상이 아닌, 인류의 기원과 함께 해온 보편적 현상을 다루고 있다. 책은 동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부터 시작해, 농업 혁명기, 지중해 세계와 실크로드의 교류, 15세기 이후 대서양 노예 무역과 제국주의 시대의 쿨리(coolie) 노동, 그리고 현대의 난민 이동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이주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특히 저자들은 유럽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 이동과 상호작용을 균형 있게 서술한다. 13세기 몽골제국 하의 교류, 인도양 무역 네트워크, 그리고 중국인의 디아스포라 등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소외되었던 이주의 흐름을 복원해냄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이주사'를 정립한다.
이주 노동자들이나 새로운 뉴커머들의 머묾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했던 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이주민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거나, 공동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곤 했다. 책의 공동 저자인 회르더와 하르치히의 초기 연구가 독일인의 아메리카 이주에 집중되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인식의 반영이었다. 한편, 가바치아가 미국 내 이탈리아 디아스포라를 연구한 것도 이러한 분절된 이주 연구의 틀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모든 문화는 순수하지 않고 혼종적이며, 본질적으로 평등하다고 하는 인식이 촘촘하게 엮여져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글로벌 연결망들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지지자들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은 민족국가적 경계들이 양자택일의 충성심과 소속감을 요구하고 있다. 책은 이런 경우에도 혼종적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 이주자들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어쩌면 '이주사란 무엇인가'의 낙관이 이주민들을 문제로만 바라보려는 시각을 교정하고, 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지향하려는 과정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 또는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틀 역시 이주민들을 단일한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주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이다. 자발적인 이주도 있고, 비자발적인 이주도 있으며, 일시적 이동과 영구적 정착이 얽혀 있다. 이 책은 그런 복잡하고 다양한 이주의 역사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이용일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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