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 일기로 별세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7시 사이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에서 미사를 마친 뒤, 영결식이 열리는 명동성당으로 고인과 운구 인력이 이동할 예정이다.
고인은 리무진에 운구된 상태로 병원을 나서며, 생전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후배 배우 정우성이 영정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들고 동행한다. 또한 설경구, 박철민, 유지태, 박해일, 조우진, 주지훈이 운구를 맡는다.
명동성당에서는 오전 8시부터 미사가 진행되며, 약 1시간 뒤인 오전 9시경 파밀리아 채플에서 영결식이 엄수될 예정이다.
안성기 지난 5일 혈액암 투병 중 별세
안성기는 지난 5일 오전 9시께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을 진단받은 뒤 2020년 완치 소견을 받은 지 불과 6개월 만에 증상이 악화돼 다시 치료를 받는
등 힘겨운 투병 과정을 겪었다.
그는 1959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길 위의 구도를 그린 '만다라'(1981·임권택 감독)와 한국 코미디 영화의 새장을 연 '투캅스'(1993·강우석)를 비롯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이명세), '화장'(2015·임권택) 등 69년간 200여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생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랜 투병 중에도 영화 현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며 연기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한때 부담이 컸지만 자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최고의 파트너로는 영화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에서 함께한 박중훈을 꼽았다.
대중에게는 “믿고 보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아역 출신 국민배우..한국영화사 산증인
아역 스타로 데뷔한 안성기는 1960년대 한국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았다. 1950~60년대에만 약 7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고교 진학 이후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연기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군 복무를 포함해 약 10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그는 1977년 영화 '병사와 아가씨들'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로 제19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성인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거지 ‘민우’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고래사냥'(1984·배창호 감독), 후배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칠수와 만수'(1988·박광수 감독) 등을 통해 198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한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에 접어들면서 안성기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남부군'(1990·정지영 감독), '하얀전쟁'(1992·정지영 감독), '투캅스'(1993·강우석 감독), '태백산맥'(1994·임권택 감독), '퇴마록'(1998·박광춘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이명세 감독)까지, 출연작마다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2000년대에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영화계의 맏형으로 자리했다. 생애 첫 남우조연상을 안긴 '무사'(2001·김성수 감독), 한국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 '실미도'(2003·강우석 감독), 박중훈과 다시 호흡을 맞춘 '라디오 스타'(2006·이준익 감독) 등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2010~202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현장을 지켰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 '부러진 화살'(2012·정지영 감독)로 제49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마지막 작품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에서는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맡아, 묵직한 존재감을 남겼다.
김형석 전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은 “안성기는 한국영화가 한참 상승곡선을 그리던 1950년대 말에 데뷔해 황금기라 일컬어지던 1960년대를 경험했고, 한국영화가 곤두박질치던 1970년대 말에 돌아와 1980년대 뉴 웨이브와 1990년대 산업적 격변을 모두 겪은 배우”라며 “생존하는 영화인 중 광복 이후 한국영화의 질곡과 변화를 이처럼 생생히 체험한 사람은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 오로지 둘뿐이다”고 평했다.
금관문화훈장 추서, 이재명 대통령도 추모
고인은 오랜 배우 생활만큼이나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 차례 수상했다. 특히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주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로 기록됐다. '기쁜 우리 젊은날'과 '하얀전쟁'으로는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2005년 보관문화훈장(3등급), 2013년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받았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한국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주어졌다.
고인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등으로 사회적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대한민국 영화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안성기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추모했다.
한편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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