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부터 일찌감치 인공지능(AI) 구축을 위한 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속도가 붙지 않는 모양새다. 첫발만 떼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 얘기다. 개별 기업들이 고도화된 AI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가 장비를 동원한 학습과 실험이 필수적이다. 거대 기업들은 이런 인프라를 스스로 확보해 연구와 실행 기반을 만들 수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 등을 포함한 대다수 기업은 자체 인프라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AI데이터센터와 함께 향후 국가 명운을 결정할 주요 필수시설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그간 두 차례 유찰되는 등 진통이 있었다. 지난해 정부 설명회에는 100곳 넘는 기업이 참여했지만, 1차 입찰 참여자가 1곳도 나타나지 않아 유찰됐다. 원인은 명확했다. 특수목적법인(SPC) 설계와 지분투자 구조가 민간 참여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초기 투자와 운영 리스크는 민간이 떠안으면서 수익성과 경영 자율성은 제한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조건 수정 없이 2차 입찰에서도 유찰되자 정부는 민간기업 참여에 불리한 지분투자 구조를 정비, 세번째 시도 끝에 참여자를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SDS가 삼성전자와 KT, 네이버클라우드, 카카오 등을 컨소시엄으로 꾸려 단독사업자가 됐지만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정부 금융심사 일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SDS 컨소시엄은 SPC 설립과 부지 착공 등의 일정을 진행해야 하지만 SPC 설립은 현재 전담팀(TF) 구성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관 공동사업이지만 사업 지연으로 삼성SDS 컨소시엄은 애가 타는 상황이다. 최근엔 삼성SDS 측이 직접 전남 해남 솔라시도 부지를 찾았고, 이준희 삼성SDS 대표가 이번 CES 2026 간담회에서 사업 타임라인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7월에 국가AI컴퓨팅센터를 착공한다"며 "금융부문 심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이 대표의 멘트에 추가 설명은 없었지만 행간에 담긴 많은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금융심사 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이후라면 5개월 남짓한 시간 안에 센터 설계와 관련한 구체적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울산 AI데이터센터 착공식에서 AI 인프라를 '고속도로'에 비유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 산업화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AI 고속도로를 깔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AI 에이전트를 기반으로 한 AI전환 경쟁이 격화되면서 AI 고속도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AI 고속도로를 깐다는 것은 단순히 GPU를 더 들여놓는 문제가 아니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리스크를 국가가 먼저 떠안고, 금융·입지·전력·제도까지 한꺼번에 조율하는 정부의 종합행정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사업자와 부지 선정까지 마무리됐으니 이제는 실행 속도가 관건이다.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정부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더해주기 바란다.
ksh@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