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겹겹이 삼각형을 쌓아 올린 우주의 별, 손에 잡히진 않지만 그건 무언가 돼가는 과정이에요."
캔버스 위에 겹겹이 삼각형을 쌓아 우주의 별을 표현하는 작가 성희승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다. 갤러리 학고재는 다음달 7일까지 '이터널 비커밍'(Eternal Becoming)을 개최한다고 15일 밝혔다. 전시 제목은 '영원한 되어감'이라는 의미다.
회화 17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성 작가가 오랜 시간 쌓아온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림을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로 보지 않는다.
성 작가의 작업에서 회화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된 붓질과 시간이 화면 위에 겹겹이 쌓인 흔적이다. 작가가 대상과 마주하며 느꼈던 감각의 층위들이 시각적인 구조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원과 삼각형을 거쳐 '별'에 닿기까지 작가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되어감'이다. 모든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하고 해체되며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탐구는 처음 '원'에서 시작됐다. 완벽함과 순환을 상징하는 원을 반복하며 세상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이후 작가의 시선은 '삼각형'으로 옮겨갔다. 삼각형은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형태로, 최소한의 모양 안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낸다. 이 과정을 거치며 원은 고정된 종착지가 아닌, 흔들리고 깨지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하나의 단계가 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성 작가는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 모습은 거의 없어진다"며 "하지만 처음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무엇인가 돼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빛의 응축, 그리고 관계의 시작 최근 작품에 등장하는 '별'은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간 탐구해 온 원과 삼각형, 완결과 확장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지점이자 작가의 인식이 변화해 온 기록이다.
성 작가에게 별은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뜻한다. 이는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과 존재의 틈새에서 마주한 빛을 응축한 모습이다.
기도와 명상이 된 붓질 전시된 작품들은 수행이나 명상과 닮아 있다. 반복되는 점과 선의 리듬 속에는 질서와 자유가 공존한다. 화면은 ‘완성’이라는 마침표를 찍는 대신 '진행 중'인 시간으로 열려 있다. 관객은 완결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생성되는 그림의 시간을 공유하며, 그 속에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투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전시장 입구에 걸린 가로 283㎝X세로 257㎝ 크기의 2025년 작 '이터널 비커밍'은 작가의 작업 과정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굵은 붓으로 그린 바탕 삼각형의 형태가 남아있고, 그 안을 작은 삼각형으로 채운 작품이다. 평소 같으면 화면을 작은 삼각형으로 가득 채우지만, 이 작품에서는 중간에서 작업을 멈췄다.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작업한 '이터널 비커밍'(Eternal Becoming)에서는 화면 군데군데 하얀 빛이 보인다. 이는 작가가 흰색 물감을 사용해 화면에 칠한 것이 아니라 구멍처럼 아무것도 칠하지 않아 가장 아래에 있는 캔버스 본래 색깔이 드러난 것이다.
성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쌓는 작업을 하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앞으로는 이런 방식의 작업을 더 해보고 싶다"고 부연했다.
대표작 '푸른별(2024)'도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의 과정으로 설계됐다. 멀리서 바라볼 때 화면은 구조와 흐름, 전체적인 리듬이 먼저 감각되며, 가까이 다가갈수록 붓질의 떨림과 손의 움직임, 시간의 축적이 드러난다. 붓이 닿지 않은 화면의 여백 또한 하나의 요소로 작동하며, 시선이 머무는 공간을 형성한다.
특히 관객들은 화면 앞에서 자연스럽게 거리와 속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호흡과 시선을 인식하게 된다.
학고재 측은 "성 작가의 회화는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관객이 머무는 시간과 시선의 이동에 반응하며 서서히 열리는 구조를 지닌다"며 "이미지 이전의 물질성과 행위, 관람이라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감각의 변화를 경험하는 자리로 작동한다"고 평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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