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마주한 ‘방출’의 시련… 은퇴 유혹 뿌리치고 택한 ‘마지막 도전’
“땀의 가치 믿는다” 차가운 승부의 세계 녹인 히어로즈의 ‘낭만’
다시 고척에 서는 201안타의 전설… 서건창이 써 내려갈 ‘뜨거운 겨울’
“땀의 가치 믿는다” 차가운 승부의 세계 녹인 히어로즈의 ‘낭만’
다시 고척에 서는 201안타의 전설… 서건창이 써 내려갈 ‘뜨거운 겨울’
[파이낸셜뉴스] 차디찬 겨울바람이 부는 야구판의 끝자락, 벼랑 끝에 몰린 노장에게 내민 손길은 결국 ‘가족’이었다. 201안타의 신화를 썼던 ‘서교수’ 서건창(36)이 돌고 돌아 마침내 마음의 고향, 히어로즈로 귀환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16일 서건창과 연봉 1억 2천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단순한 영입 소식이 아니다.
차가운 프로의 세계에서 아직 ‘낭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한 편의 드라마이자, 상처 입은 영웅을 향한 친정팀의 따뜻한 위로다.
서건창의 지난 몇 년은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2014년,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200안타 고지를 밟으며 MVP를 거머쥐었던 그 화려했던 날들은 야속하게도 너무 빨리 지나갔다. 2021년 정든 히어로즈를 떠나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될 때만 해도, 그리고 지난해 재기를 꿈꾸며 KIA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그는 ‘부활’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2024시즌 타율 0.310을 기록하며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듯했으나, 이어진 2025시즌 1군 10경기 출전, 타율 0.136이라는 초라한 성적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KIA로부터 방출 통보. 두 번의 이적과 두 번의 방출. 한때 리그를 호령했던 타격 장인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은퇴를 권유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도자 제안도 있었다. 편안한 길을 택할 수도 있었던 나이 서른여섯. 그러나 서건창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것이 남았다"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2008년 육성 선수 시절의 그 ‘악바리’ 그대로였다.
그 간절한 외침에 응답한 곳은 역시 히어로즈였다. 키움 구단은 과거의 영광이 아닌, 서건창이 가진 ‘땀의 가치’를 기억했다. 비록 전성기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교함은 무뎌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과 성실함이, 리빌딩의 파고를 넘고 있는 어린 후배들에게 어떤 백 마디 말보다 큰 울림을 줄 것이라 판단했다.
이로써 키움은 이번 겨울, 박병호 코치의 영입에 이어 서건창까지 다시 품으며 흩어졌던 ‘영웅 군단’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게 되었다.
계약을 마친 서건창은 "나를 사랑해 준 팬들 앞에 다시 서게 돼 감회가 새롭다"며 "그라운드에 설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짧은 소감 속에 방출의 설움을 딛고 다시 기회를 얻은 베테랑의 안도감과 벅차오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제 서건창은 오는 25일 고양 국가대표 훈련장에 합류해 다시 스파이크 끈을 동여맨다. 200안타를 치던 시절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다.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사나이, 서건창이 써 내려갈 ‘라스트 댄스’는 어쩌면 전성기 시절보다 더 진한 감동을 예고하고 있다.
히어로즈 팬들은 기억한다. 보랏빛, 그리고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고척돔을 휘저었던 그 특유의 타격 폼을. 추운 겨울, 방출의 아픔에 떨던 서건창의 눈물을 닦아준 키움의 선택이 올 시즌 어떤 ‘낭만 야구’로 피어날지 야구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영웅이 돌아왔다. Welcome Home, 서건창.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